[열정이 밥 먹여준다] 극단 깨비

입력 2018-05-18 00:05:04

"즐겁게 공연해야 보는 아이들도 즐거워해요"

극단 깨비의 성폭력 예방 공연 장면.
극단 깨비의 성폭력 예방 공연 장면.

경주에서 활동 중인 '극단 깨비'를 만난 곳은 경주시 알천북로의 한 가정집이었다. 연습장을 따로 갖출 정도로 넉넉한 살림이 아닌 탓이었다. 다소 침착한 분위기인가 싶더니 연습이 시작되자 모든 배우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돌고래 초음파 신호 주고받듯 대사를 치고받는데 확실히 "네네, 고객님~"보다 높은 음, 시(Si) 음 정도로 들렸다.

"콜록콜록 담배연기가 들어오고 있어. 얘들아, 도와줘~."

'뻐끔담배 마왕이 나타났어요'라는 제목의 인형극이다. 전형적인 선악 구도다. 심장, 폐 등이 주인공이고 담배연기라는 마왕은 악이다. 친구들이 보낸 맑은 공기가 선이다. 반드시 선이 악을 물리친다. 딱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눈높이다. 학부모라면 한 번쯤 봤을 만한 인형극이다.

'목숨이 아깝다면 모두모두 담배를 끊어라'는 마징가 쇠돌이식 구호보다 아이들의 뇌리에 확 박히는 건 노래와 율동이다. 그래서 모든 아동극에는 율동이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단, 가사와 맞아떨어지는 안무여야 한다. 화려한 스텝을 자랑하는 고난도 춤 실력까지 요구하진 않는다.

경북도 내에 몇 안 되는 전문 아동극단이었다. 인형극을 주로 해 관객 누구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운 점이자 좋은 점이다. 3년째 극단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박명희(56) 씨는 "인형도 만들어야 해 힘들었다. 하지만 연기에 자신이 없으니까 오히려 인형극이 더 좋다. 나를 감추니 오히려 속의 것을 끌어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단원은 10명 안팎. 필요한 때 객원 배우를 초빙하기도 한다. 인형극의 경우 가면을 주로 쓰고 대사를 따로 녹음하기 때문에 '발연기'가 좀 있더라도 무난하게 넘어간다.

이동화(52) 대표는 "배우가 사정이 생겨 빠지더라도 녹음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게 인형극의 장점"이라고 했다.

저작권 개념이 없어 2010년 '뽀로로극단'으로 창단한 '극단 깨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과 친근한 이름으로 다가가려 붙인 이름이었다.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도깨비를 많이 넣는다고 했다.

이 대표의 방점은 '감정'에 있었다. 아이들은 감정을 느끼는 촉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배우가 실제로 즐겁지 않고 지쳐 있으면 아이들이 고스란히 느낀다고 했다. 모든 사진 요청에 응해주고, 안아달라면 안아준다. 팬들의 사인 요청을 뒤로하고 지나치는 일부 프로스포츠 선수들과는 다르다. 연습 내내 줄곧 '웃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가 강조된 이유였다.

희소성 있는 극단이지만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무대는 아이디어 싸움이다. 흡연 예방 인형극, 아토피 예방 인형극, 성폭력 예방 인형극 등 레퍼토리만도 10가지가 넘는다. 1편당 40분 정도 길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와 흥미 요소를 결합시켜야 하기에 주문형 제작 공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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