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은 잘 있죠?
『제후의 선택』 김태호, 문학동네, 2016
작품을 쓴다는 것, 더군다나 동화를 쓴다는 것은 상상력이 최대로 동원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을 굴렸다, 풀었다, 꼬았다 하며 온종일 고민을 해도 아무것도 쓸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제17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책의 이야기 물꼬는 생각지도 않았던 옛이야기에서 풀어지고 있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긴박했다. 제후와 고양이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도대체 이 아이와 고양이의 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을 준다. 엄마, 아빠의 다툼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가 중요함을 증명해야 하는 아이. 모든 일에서 다급해 하는 제후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 제후는 곧 선택을 해야만 하는 묵직한 숙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기로 하면서 시작된 나누는 일에 제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건 하나하나, 통장의 돈까지도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엄마 아빠도 제후 앞에서는 싸움을 멈춘다. 선뜻 제후를 맡지 않겠다는 엄마 아빠의 행동에서 받았을 제후의 상처가 아팠다.
내 가까이 있다면 기꺼이 제후를 한 번 꼭 안아 주고 싶다. 아린 가슴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도록. 아직 어린 제후에게 선택권을 준 엄마 아빠의 행동은 진정 옳은 일일까?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어른들의 얕은 속내가 보이는 듯하다.
"어느 쪽이든 환영받으며 가고 싶었다. 떠맡겨지는 짐처럼 따라가고 싶진 않았지만…."
제후는 선택을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리지만 제후로서 사는 게 쉽지가 않다. 오죽하면 들쥐에게 또 다른 제후를 부탁했을까. 어른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또 한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고양이의 공격으로 사라져 버린 제후와 제후는 또 다른 제후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어른들의 선택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제후의 마음을 우리가 보듬을 수 없을까? 아저씨가 다시 만난 진짜 제후인 듯한 아이의 모습이 아팠다.
"아이의 손가락 끝은 모두 빨갛게 멍울이 져 있었다. 손톱을 너무 짧게 잘라서 손톱 밑 살들이 전부 부어올라 있는 것이었다."
제후는 말한다. "한 번 자른 손톱인데 이상하게 아물지 않아요." 영원히 가져갈 제후의 아픔이 안타까웠다. 제후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빨갛게 멍울진 손톱만이 제후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집중하지 않았던 제후의 멍울진 손톱은 엄마 아빠가 싸우느라 잊었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빨갛게 멍울진 손톱을 간직한 채 또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제후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다. 5월처럼 싱그러운 어린이의 계절에 동화 한편 읽어서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그 녀석은 잘 지내죠?" 그들에게 던질 아픈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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