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대자보의 힘

입력 2018-05-11 00:05:00 수정 2018-05-26 22:30:43

'눈에 띄면 딱 보기 싫은데, 안 보면 괜히 궁금하다.'

학교나 회사, 아파트 벽에 나붙는 대자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80, 90년대 '대자보를 안 써본 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그후 인터넷, SNS 등 첨단 문명에 밀려 영원히 사라지는가 싶었더니 탄핵 정국, 미투운동을 거치며 대자보가 되살아났다. 정치적인 주장을 전달하거나 타인을 선동하는 데에는 안성맞춤인 모양이다. 자그마한 SNS 화면보다는, 삐뚤삐뚤하지만 열정적이고 큼직한 글씨가 호소력을 갖기 마련이다.

최순실 사태 때, 몇몇 대자보가 아직도 기억난다. 2016년 10월 20일 '화연이'라는 이화여대생이 부정 입학한 정유라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대자보는 젊음의 열정과 자긍심을 보여준 '걸작'으로 꼽힐 만하다. '어디에선가 말을 타고 있을 너에게'라는 제목으로 "누군가는 네가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하더라. 근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부럽지도 않아. 정당한 노력을 비웃는 편법과 그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얻어진 무능. 그게 어떻게 좋고 부러운건지 나는 모르겠다"고 썼다.

비슷한 시기에 원광고 학생회 명의의 대자보도 고교생답지 않게 뛰어났다. '누나! 이화여대 합격한 거 축하해!(중략) 우리 학생들은 공평한 시스템 내에서 공평한 심사를 받을 권리가 있고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어. 우리의 꿈과 희망, 믿음을 지켜줘.' 이런 진솔한 대자보가 민주주의, 인권 향상에 밑거름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옛날부터 '벽서' '방문'이라는 명칭이 있지만, 중국 문화혁명 당시 대자보(大字報)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벽보'라는 한국형 명칭이 잘 사용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사건은 지난 4일 혁명 원로의 자제인 학자 판리친이 베이징대 교정에 장문의 대자보를 붙였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의 종신 집권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으로, 곧바로 학교 당국에 의해 철거됐다. 문화혁명은 1966년 5월 25일 베이징대 학생들이 학교 지도부를 공격하는 대자보를 붙인 것에서 시작됐으니 역사의 엄중함을 느끼게 한다. 대자보는 민심이 떠나고 있다는 상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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