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약탈자를 징벌하는 법

입력 2018-05-05 00:05:03

BC 382년 그리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이라고 정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에는 '사회'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불렀다. 후일 로마 시대에 철학자 세네카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동물이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is)로 바뀌었다고 한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인간이 뭔가를 위해 모이고 집단 내에서 서로 돕고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삶을 지속해나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혈거지나 동굴 같은 폐쇄적인 장소에서 집단으로 살았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단의 구성원이 식량 조달, 생활, 교육 등으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었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적 협력을 강화하여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인간의 정교한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집단 내부에서 권력을 쥐고 빼앗기 위한 암투가 벌어지고 집단의 존속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자에 대한 공격도 가해졌다. 여기에도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집단 내에 그럴 듯한 소문을 유포하고 남에 대한 험담을 잘 퍼뜨리는 사람이 권력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집단 내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남 이야기로 이루어졌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가운데 언어는 더욱 발달했으며 발달된 언어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큰 집단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오늘날의 우리가 소문과 평판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집단 내에서 살아남은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동굴 사회 속에서의 소문과 험담, 귓속말은 오늘날 이메일과 메신저, SNS(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 블로그, 뉴스('속보', '단독' 따위의 허울을 쓰고 있는), 인터넷 포털의 게시물, 댓글, '좋아요' 표시로 변형되었다. 기업들은 입소문 마케팅(Viral Marketing)으로 상품 구매와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을 도입한 지 오래되었다. 여기에는 유전학, 신경학, 심리학에서 도출된 첨단의 기술과 기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특히 정치적, 경제적 이익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은밀하게 개인과 집단에 의한 여론 조작이 성행하고 있고 심지어 국가의 비밀기관을 통한 공작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직과 과학, 기술을 가진 보이지 않는 상대에 맞서 개개의 인간이 줏대와 맨정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범람하는 뉴스, 중독성 강한 SNS, 조작된 댓글, 조작된 랭킹, 조작된 실검 순위, 조작된 공감 숫자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의 이지, 판단력으로 버티는 것은 '맨주먹 붉은 피'로 총칼에 맞서는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존속하는 한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정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언어와 네트워크가 사적, 불법적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에 의해 악용되고 그들이 우리의 주의력을 약탈해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법과 제도를 고치고 보완하는 것 외에도 개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각자가 가진 무기는? 신경 안 쓰기, 무시, 무관심, 그리고 경멸이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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