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遺事<유사>♪] 조선시대 대구서 열린 노래대회 통과해야 명창

입력 2018-05-04 00:05:00

나이 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KBS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이다. 역사책을 보아도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일본에서도 일요일 낮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전국노래자랑 시간이 있다. 그곳에서도 전국을 다니며 주민들의 노래 솜씨를 경쟁하는 내용은 같지만 우리와 진행하는 방법은 매우 다르다. KBS는 야외에서 녹화를 하며 노래를 못해도 거의 탈락을 시키지 않는다. 특히 노인이나 장애자가 나오면 무조건 합격이다. 그러나 NHK에서는 실내에서 노래자랑을 하며 조금이라도 노래가 틀리면 어린이고 노인이고 가리지 않고 불합격시킨다. 일본은 소수가 합격하고 한국은 극소수가 불합격한다. 한국은 너무 장난조로 진행되어 짜증이 나고 일본에서는 쓸데없이 진지하게 진행해 답답하다. 조선시대에도 전국노래자랑이 있었다. 당시에는 전국을 순회하는 공연을 하지 않았고 아마추어들은 참여를 하지 못했다. 전국에서 직업적 창꾼을 꿈꾸는 사람들은 일단 전주에 가서 대사습놀이 예선을 거쳐야 한다. 어렵게 그곳을 통과하면 대구감영 선화당에 와서 '어전 명창' 선발전에 참여하게 된다. 대구의 전국경연대회 결선을 통과하면 마지막으로 서울에 가서 국창으로 인정을 받았다. 조선 판소리에서 전라도는 소리의 전초기지이고 진정한 고수는 대구에서 발판을 마련해 서울에 가서 완성이 된다는 것이 공식 과정이었다. 대구 본선을 통과하고 서울무대에서 공연을 한 다음에 노래깨나 좀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많이 불렀지만 전국적으로 불리던 노래이고 특히 개화기 이후에는 대구가 여창(女唱)의 주된 생산지가 되었다. 박록주(선산)와 박귀희(칠곡)는 대구에서 사재를 털어 사립 국악고등을 창설하였다. 그 학교의 초기 출신으로는 강소춘, 김기향 그리고 김초향, 김소향 자매 등의 명창이 나오고 뒤이어 김추월, 이소향, 김록주, 임소향, 박소춘 등이 배출된다. 국악고등 외에도 달성권번, 대동권번에서도 소리꾼들이 배출되었고 판소리 선생으로는 동편제의 송홍록, 박기수, 조학진 등과 서편제의 유성준, 김창환, 박지홍, 박동진 등이 있었다. 나중에 국창이 된 송홍록도 데뷔 시절 대구감영 선발전에 나왔다 노래가 신통치 않다고 심사위원인 기생 맹렬이한테 무참한 비판을 받고 울며 무대를 내려왔다고 한다. 분한 마음을 갖고 고향 운봉 비전리에 내려가 생사를 건 공부를 한 뒤에야 득음(得音)하여 대성을 하게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대구가 판소리의 고장이고 경상감영의 선화당과 징청각이 주된 무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판소리 하면 전라도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남지역은 동편제 중심이었고 수많은 소리꾼들과 귀명창들이 사는 곳이었다. 현재도 무형문화재 이명희 선생을 중심으로 대구의 판소리 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학란이 전라도에서 발발했기 때문인지 동학의 탄생지를 전라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동학은 경주 내남 사람 수운 최제우가 창설한 종교이며 시작도 거기고 지금도 그곳에 가면 동학을 닦는 도반들이 모여 산다.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예수교는 딴 민족이 믿고 인도 사람 석가모니 불교도 인도에서 믿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경상도에서 창시된 동학도 고향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전라도에 건너가 빛을 발했다. 조선 말기에 서민들의 애환을 신명으로 승화시키던 판소리는 전국적으로 불리던 노래인데 특히 전라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공부를 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창꾼들은 대구에 와서 공인을 받아야 전국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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