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농업 담당 선생님의 제자 사랑은 유난스러웠다. 농번기 때마다 농사일에 시달리는 제자들이 안쓰러웠던지 틈만 나면 "제군들, 우야든동 열심히 공부해서 농촌을 탈출하라"고 강조하셨다. 농사의 수고로움을 잘 아는 터라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지는 동안 학우들의 얼굴에는 비장감마저 감돌았다.
당시 기자에게도 농사는 공부보다 하기 싫은 고역이었다. 이맘 때쯤 시작되는 모내기도 그렇지만 오뉴월 뙤약볕 아래에서 하는 보리타작은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까슬할 정도다.
주말에도 '보리타작 한다'는 소리에 아침밥도 먹지 않고 학교로 줄행랑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중에서 상당수가 농촌 탈출(?)에 성공했다.
농업 기술도 발전하고 농기계 같은 장비도 좋아진 요즘, 주말농장에서 취미삼아 농사를 짓는 상품까지 나와 있다고 하니 참 세월이 좋아지긴 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바람이 너무 간절했던 탓일까. 너도나도 농촌을 떠나는 바람에 요즘 농촌 마을이 텅 비고 있다는 소식이다. 거기다 저출산'고령화까지 겹쳐 마을이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단다. 고통은 고스란히 남은 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마을 주민들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생활편의 시설 부족, 폐교, 일손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경북도가 밝힌 결과는 충격적이다. 경북 23개 시'군 중 17곳이 30년 이내 없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20~39세 여성 인구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대비를 통한 지방소멸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23개 시'군 중 17개 시'군이 소멸우려 지역으로 나타난 것이다. 고령 인구(65세 이상) 대비 20~39세 여성 인구(가임 여성의 90%가 분포하는 연령층)의 비중이 소멸위험지수다. 이 수치가 1.0 이하면 인구쇠퇴주의단계, 0.5 이하면 인구소멸위험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소멸위험(소멸위험진입, 소멸고위험(0.2 미만))에 진입했을 경우 30년 내에 마을이 사라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군위'의성'청송'영양'봉화군 등 경북을 갈고리처럼 받치고 있는 'J'벨트 지역은 소멸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속도 역시 너무 빠르다. 지난해 3월 소멸위험지역에 이름을 올린 봉화군이 소멸고위험군에 새로 진입했고 '정상지역'이었던 칠곡군도 9개월도 안 돼 소멸주의단계로 진입하는 등 농촌 소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30년이 아니라 10년도 안 돼 경북의 농촌사회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위기에 처한 경북도와 농어촌 지방자치단체도 인구 늘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고 귀농 귀촌을 장려하고 나섰지만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청년유출'저출산'고령화라는 삼중고를 지자체 혼자 해결하기에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보다 일찍 이 문제에 맞닥뜨렸던 일본은 해답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출산율 증가와 인구 유입을 위해 다양한 시책을 본격 추진했다. 지방으로 이주하는 도시민에게 1인당 약 4천만원의 경비를 3년간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그 결과, 많은 도시민들이 지방에 정착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정치권이 손잡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6'13 지방선거가 달아오르고 있다. 많은 예비후보들이 청년일자리 창출'신성장산업육성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경북지역 농촌 대부분이 사라지는 가운데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의미가 깊다. 마을소멸은 곧 지방의 붕괴로 이어지고 지방의 붕괴는 국가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촌 마을 살리기' 해법이 이번 선거를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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