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도 갑질 같은 게 있나?" 몇 해 전 중국을 방문했다가 현지 가이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 사는 곳이 얼추 비슷하리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국에서 인민은 동등하다. 갑질은 상상도 못한다. 직장에서 상사가 하급 직원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큰일 난다." 중국에서는 공산당 핵심간부를 빼면 신분 차별이 없다. 갑질을 하다가는 죄질에 따라 최대의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미국에서도 갑질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총기 소지가 허용된 나라인데 어느 총구에서 실탄이 날아들지 모르는 판에 갑질을 할 용자(勇者)는 없다. 갑질에 대한 법적 처벌도 매우 엄격하다. 납품업체 등을 상대로 대기업이 갑질을 하다가는 반독과점법 등으로 연방법원에 제소돼 처벌되는데 그 수위가 기업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런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갑질 문화는 생경할 수밖에 없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대한항공 오너 일가 관련 기사를 쓰면서 'Gapjil'이라는 단어를 썼다. 한국말 '갑질'에 해당하는 단어가 그들의 언어 체계에 딱히 없어서다. 대신, 이 신문은 '봉건 영주처럼 행동하는 임원들이 아랫사람들과 하도급 업자들을 괴롭히는 것'이라며 갑질에 대한 설명을 붙였다.
우리나라만큼 서열 의식이 강한 나라는 없다. 힘을 거머쥐면 타인의 영혼까지 지배하려 든다. 갑질을 하기 위해, 혹은 갑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권력을 추구한다. 조선시대 반상(班常·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것) 문화의 잔재가 갑질 문화로 환생한 듯하다. 게다가 존댓말·반말 문화까지 있으니 '서열 바이러스'가 창궐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토양도 없다.
지도층 인사들의 갑질 뉴스가 사흘이 멀다하고 터져 나오고 있는데 그 생명력이 참 질기다. 그 폐해를 단기간에 청산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 사회 곳곳은 갑질 문화로 오염돼 있다. 사실, 갑질은 권력 중독의 한 단면이다. 미국의 한 실험에서는 대상군에게 권력을 주니 남녀 구분없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의 뇌에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가 비정상이라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개념 즉,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국민소득만 높다고 선진국은 아니다. 구성원들의 공감 능력이 높은 나라가 진짜 '잘사는' 나라 아닌가. 멀다 해도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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