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6년 3월 24일. 당시 김무성 대표는 '옥새'(당 대표 직인)를 들고 부산 영도대교로 내려갔다.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가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을 '컷오프'시키려 하자 김 대표는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줄행랑쳤다. 이른바 '옥새 들고 나르샤~' 파동이다.
유승민 공천 파동은 '진박 심기, 배신자 심판'을 명분으로 청와대의 하명,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충직한 집행, 김 대표의 추인 거부라는 구도로 진흙탕 싸움이 전개돼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는 빌미가 됐다. 유 의원 공천 파동 전에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은 기본이고 180석을 장담하는 분위기였으나 총선 결과는 122석, 제2당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가 없었다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도 격발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의 과오를 씻기 위해 당명까지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그 한국당 회의실에는 최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걸개그림이 걸렸다. 한국당이 이 같은 '자해성' 문구를 내건 것은 현 정부에 대한 경고도 있지만 집권 여당 시절의 반성을 담아 국민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렬한 자기비판이 상대방에 대한 가장 아픈 비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구를 고안했다"면서 6'13 지방선거에서 주요 슬로건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당 내부적으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 환기 차원에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의 공천 보복과 보은 인사, 여론 조작 등을 반성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당의 대구 동구청장 공천 과정은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경고 문구와는 너무도 배치되는 길을 걷고 있다. 대구시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동구청장 후보로 단수추천에서 컷오프 경선으로, 다시 단수 추천자의 경선 불참으로 그를 제외한 2차 추천자를 의결했다. 이후 애초 단수 추천받은 후보가 경선을 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2차 추천자가 반발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혼선을 빚은 데는 중앙당의 강한 개입도 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우리는 망해도 이 길을 간다"는 작태와 다름없어 보인다. 동구발 공천 파동은 유승민 공천 파동과 판박이다. 청와대와 중앙당 공관위가 한편이 되고 당 대표가 반발하던 구도에서 중앙당 공관위와 대구시당 공관위가 한편이 되고 당협위원장이 반발하는 구도로 바뀌었을 뿐 막장드라마 같은 공천 방식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한국당은 어차피 본선에서 자기당 후보가 이길테니 지역 정서를 볼모로 막장 공천의 '끝판왕'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정종섭 국회의원(동갑)과 이재만 당협위원장(동을)에게 있다. 두 사람의 정치력 부재와 알력 탓이다. 이들은 동구청장 예비후보를 두고 사실상 대리전을 펼쳤다. 한쪽에서는 "단수추천을 일임해놓고 뒤늦게 문제 삼는 이유가 뭐냐"면서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소통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후보를 결정한 것이 후보들의 불복 원인"이라고 반박한다. 이같이 두 당협위원장이 다투는 상황은 차기 총선과 맞물려 있다. 어떤 방식으로 후보가 결정되고 또 누가 되느냐에 따라 두 위원장의 유불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 당협위원장은 다음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매서운 회초리를 맞아야 할 것 같다.
대구시당 공관위의 무원칙과 무소신은 더 문제다. 중심과 원칙을 잡아나가야 할 시당 공관위는 후보자들의 반발이 있다고 해서 또 중앙당의 개입이 있다고 해서 경선 룰과 후보자 검증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우왕좌왕했다.
이번 공천 파동은 지역민심을 볼모로 한 오만함의 극치다. 막장 공천의 후유증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증명되지 않았던가? 유권자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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