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우리는 '이야기'를 버렸다

입력 2018-04-21 00:05:00

우리는 우리말 '이야기'를 버렸다. '글짓기'도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스토리텔링'을 앉혔다. 덕분에 글짓기 대회는 스토리텔링 대회로, '이야기 공모전'은 '스토리텔링 공모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군가가 스토리의 힘과 산업적 가치를 열거하며 '스토리텔링'과 '이야기'는 다른 거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영어, 또 하나는 우리말일 뿐, 둘은 같다.

시작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이었다. 디지털 시대가 낳은 이 신조어는 1990년대 중반, 미국의 한 지역 방송에서 처음으로 전파를 타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말 그대로 '디지털'과 '스토리텔링'이 합쳐진, 즉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스토리'를 '텔링'하는 일종의 '행위'를 뜻하는 말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막 열리던 그때였다.

창작자들은 콘텐츠를 만들기에 앞서 그 콘텐츠에 담긴 이야기가 디지털 문화와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그리고 확장성은 있는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런 다음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콘텐츠를 만들고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확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전개를 지칭하는 신조어였다. 순기능도 비교적 분명했다. 작은 규모의 작은 콘텐츠가 큰 시장을 넘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 것이다. 콘텐츠 시장의 크기와 다양성이 늘어난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일단의 자칭 전문가들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제 것인 양 가져가 개념을 부풀리고 해석을 독점했다. 마치 온 나라를 먹여 살릴 새로운 기술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시나리오 작법' 같은 책을 외국에서 가져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책으로 둔갑시켰고 잘된 콘텐츠마다 따라다니며 '스토리텔링의 승리'라는 해석을 붙여댔다. 이들의 활약(?)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놓고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했다고 말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화콘텐츠 산업과 시장의 모든 것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 하나로 장악해 버린 자칭 전문가들의 희한한 논리에 주눅 들어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한 홍길동처럼 애니메이션을 애니메이션이라 쉽게 부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성공한 감독은 '그냥' 영화감독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거장'으로 높여(?) 불리기도 했다. 아무튼 느닷없이 그렇게 고양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별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그런 전성기를 누리던 자칭 전문가들은 틈틈이 자신들에겐 어렵고 불편했던 '디지털'이라는 세 글자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그렇게 지난 세월 '디지털'은 가고 '스토리텔링'만 남았다. 그 나름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채 바다를 건너왔던 신조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결국 '스토리텔링'이라는 보통명사로 회귀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는 동화도 기행문도 수필도 모두 사라지고 스토리텔링만 남은 해괴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숱한 스토리텔링 대회와 공모전이 열리고 학교에선 스토리텔링을 과제로 내지만 정작 아무도 그게 뭔지를 모른다.

대체 '스토리텔링'이 뭔지, 어떻게 하면 단순한 '이야기하기'가 아니라 뭔가 차원 높을 것 같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는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답을 찾아 헤맨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우리가 진짜 우리의 이야기로 뭔가를 하고 싶다면, 우리도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코코'(COCO) 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유령 같은 '스토리텔링'부터 버려야 한다. '스토리텔링'에 밀려난 '이야기'라는 우리말부터 되찾아야 한다.

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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