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구 전체 교사들이 사용하는 교육청 통합 메신저망을 통해 한 편의 글이 올라왔다. 평소 학교 업무와 관련한 내용, 공지사항을 주고받거나 교직원들끼리 소통하는 공간에서 교사가 무력감을 호소하는 내용이라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힘이 진실이 되고, 권력이 또 다른 권력을 지켜주는 세상에서 9개월의 외롭고 아픈 기록이라고 했다. 귀동냥한 사연은 이렇다.
한 공립고등학교 K교사는 2017년 6월 교육전문직 임용후보자 시험에 응시하고 불합격했다. 장학사, 교육연구사를 뽑는 시험이다. 서류심사와 다면평가 1차 전형을 거쳐 서술, 실기, 면접 등 2차 전형을 치른다. 교육과정'법규'정책'전공 등 서술시험이 90점, 수업장학 능력'기획안 작성'정보활용 능력을 보는 실기가 150점, 면접은 60점 배점인데 이를 1차 전형 점수와 합쳐 합격자를 결정한다. 지난해 대구는 중등 10개 과목에서 1명씩 선발했다.
앞서 두 번의 장학사 시험에서 낙방한 K교사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임했다고 한다. 1차 전형 5배수 통과를 기대하지 않았다가 행운을 얻었다. 그가 응시한 과목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데 작년엔 3명만 지원했다는 것. 교육 경력 15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직은 6년 이상 근무하면 교감, 교장으로 옮겨갈 수 있다. 학교에만 근무하는 교사보다 승진이 유리해 경쟁이 치열하다.
K교사가 주장하는 시험의 불공정은 워드프로세스로 기획안을 작성하는 실기시험이다. 4시간에 걸쳐 5쪽 분량의 기획안과 요약본 1쪽 제출이 과제다. 시험 종료 후 K교사는 이날 몇몇 응시자들이 제출한 USB 답안지 최종 저장 시간이 시험 종료 시각 이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응시한 고사실 18명 중 12명이 종료시각을 초과했다. 최장 9분을 넘긴 응시자도 있었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청과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그는 시험과 채점, 합격자 선정까지 의혹에 대해서 조사를 요구했고, 교육청은 확인한 결과 K교사가 떨어진 게 맞다고 답변했다. 이후 K교사는 교육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지만 허사였고, 전문직 합격자 발표 무효 확인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중앙행정심판위는 시험 관리자의 재량권을 인정하며 교육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교육청은 기획안 출력을 기다리면서 저장 여부를 최종 확인하도록 허용하고 응시자들에게 알렸다고 했고, K교사는 들은 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둘 중 한쪽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다른 고사장에선 17명이 응시했는데 시간 초과자는 1명이었다.
사실 전문직 시험을 둘러싼 의혹은 실제 비리로 확인되기도 했다, 2010년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선발에서 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난 '하이힐 폭행 사건'이나 2013년 충남교육청의 시험지 유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충남교육청에선 출제한 장학사가 자살하고 1인당 수천만씩 주고 문제를 받은 교사 등 40여 명이 징계를 당해 쑥대밭이 됐다. 해당 교육감도 모두 사법처리 됐다.
이후 각 교육청에선 교육전문직 인사제도 개선안을 앞다퉈 내놓았다. 문제 출제를 타 시도에 맡기고, 면접 위원들을 외부인으로 채우고 있다. 하지만 선발구조는 여전히 폐쇄적이다. 서술, 기획안 주관식 채점이 여전히 내부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채점 기준도 모르고 누가 어떻게 점수를 매기는지 알 수도 없다. 그래서 의심과 불신을 유발한다. 대구는 올해부터 필기시험이 아닌 업무역량적성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직 선발에 '학종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학종이 학부모로부터 불신을 사는 것은 '금수저'깜깜이 전형' 때문 아닌가? 해법은 간단하다. 시험 결과물을 공개하면 끝이다. 공정하게 선발했다면 이의 제기자에게 보여주고 승복을 받으면 된다. 우동기 교육감은 한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교육을 견지해 왔다. 그렇다면 불편한 문제를 제기한 교사는 심판기관에 맡기고 모른 체하는가. 차기 대구교육의 수장이 될 교육감 후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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