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주 넉넉잡아도 100년을 살기 어렵다. 다른 세상을 가보지 않아 모르고, 뚜렷한 종교관도 없어 내세의 의미도 모른다.
다만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행복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뭘 해도 불행의 그림자 속에 놓여 있다. 행복의 순간은 짧고 불행의 시간은 길어 보인다. 훌륭한 삶을 산 성현들도 불행의 고통에 번민했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방황하던 고교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절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어머니로부터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지만 성당보다는 불교와 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때 스님이 되었다면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속세에서 벗어난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을까. 아니면 세상과 더불어 사는 대중적이거나 정치적인 종교인으로 살고 있을까. 사이비 교주가 돼 비난받고 있지는 않을까.
기자로 밥벌이하면서도 사회에서 헌신하거나 구도자의 삶을 사는 종교인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더 세상에 찌든 종교인들을 알게 되면서 순수했던 바람은 오래전에 깨어졌다. 사람들은 왜 그들을 존경하고 대접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성(性)에 대한 욕구를 자연스럽게 없애는 수단이다. 또 동물의 본성인 종족 번식, 즉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방법으로 중요시했다. 이런 욕망을 단절하고 살아간다는 건 무척이나 어렵기에 사제와 스님을 경외하는 게 아닐까.
아들, 딸이 다 자란 요즘 머리 안에는 어떻게 '자연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자연인은 일부 중장년 남성들의 꿈이다. 주위에는 자연인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을 고정적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년에서 노년을 향해 달리는 50대 중반의 또래들이다. 이들은 직장 생활을 마무리한 뒤 제2의 삶을 자연인으로 보내고 싶어한다. 애초 자연인을 다룬 프로그램은 세상과 단절하고 홀로 사는 사람들에 집중했지만 요즘은 성공한 삶을 보내고 자연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그리고 있다.
왜 자연인이 되려고 하는가. 종교인의 삶에 가장 근접한 점을 그 이유로 꼽고 싶다. TV 속 자연인들은 하나같이 개인 욕망과 사회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자유인으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속에는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여성으로부터의 도피도 포함돼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듯 여성이 좌우하는 삶에서 탈피하려는 남성도 많다.
나이 들어 저지를 수 있는 세상의 추잡함에서 탈출하는 수단으로도 자연인은 훌륭한 선택이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미투 운동'으로 비난받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노욕이 꿈틀대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남성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말부부라 안동에서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는데 주로 거주하는 젊은 여성들과 마주칠 때는 먼저 피한다. 따라가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좁은 복도에서 부딪힐 수도 있기에 근본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업무로 여성들을 상대할 때는 스스로 말조심할 것을 다짐한다.
그나마 기자 세대는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 여성 위에 군림하고 살았기에 덜 억울할 수도 있다. 세상이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요즘 결혼한 젊은 남성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부인을 하늘 같이 떠받드는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고 아예 결혼할 수도 없는 세상인 것 같다.
그렇지만 혼자 사는 자연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종교인이 되려는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엄청난 용기가 뒤따라야 한다. 자연인의 삶을 꿈꾸면 좀 더 일찍 자연에 뛰어드는 게 좋다고 하는데…. 언제쯤 욕망과 욕심을 내려놓을까?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