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감기관은 국회의원의 감사 대상
예산 좌지우지, 운영전반에 영향력
돈 받아 활동하는 의정 관행 없애기
빨리 결단 내려 정치개혁 힘 실어야
"청와대가 김기식 금감원장을 곧 집에 보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회동 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털어놓은 말이다. 홍 대표의 '느낌'이 일방적 기대인지는 모를 일이다. 문 대통령은 김 원장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홍 대표의 발언을 듣고만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청와대도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김기식 지키기'를 위한 완강한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위법은 물론, 도덕성이 평균 이하라면 사퇴시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다. 상황 전개에 따라 자진 사퇴 카드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검찰은 전격 압수수색부터 시작했다. 홍 대표처럼 '느낌'이 왔는지 속된 말로 '감을 잡은' 검찰의 행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의문이 생긴다. 이제 '김기식 원장이 집에 가면' 모든 게 정리되는 건가. 정권 흠집 내기를 통한 야당의 승리로 끝나면 족한가. 이번 사태는 그런 차원을 넘는다. 아니 넘어야 한다. 김기식 논란은 본인의 거취가 어찌 되든 분명히 따져야 할 게 수두룩하다. 넓게는 정치 개혁, 좁게는 국회 개혁을 위해 숱한 과제를 던진 사건이다. 여야 가릴 게 없다. 우리 정치인들은 무엇으로 사는지 그 민낯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는 의원들이 피감기관 돈을 받아 활동하는 관행(?) 아닌 관행을 없애는 것이다.
분명히 해 둘 것은 김기식 원장의 과거 행보가 잘못이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감싸기는 무리라고 본 청와대의 판단이 맞다. 임명 철회 혹은 사퇴가 정답이다. 야당 의원들도 관행적으로 그러지 않았느냐는 청와대의 항변은 적절하지 않다. 국민의 눈높이 운운도 과녁을 벗어났다. 핵심은 문제가 있는지 여부이다. 입법 기능과 함께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행정부에 대한 통제와 감시이다. 대통령제의 작동 원리가 삼권의 분립과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인 것이다. 이른바 피감기관은 말 그대로 국회의원들의 감사 대상이다. 의원들은 피감기관의 예산을 좌지우지한다. 돈줄을 쥐고 있으니 인사와 정책을 비롯한 운영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 잇따른 채용비리 사건은 국회의원의 인사청탁을 거절 못 하는 기관의 약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피감기관의 돈으로 출장을 간다? 목적이 무언지 자세히 살필 필요도 없다. 기관이 먼저 요청했는지 의원이 요구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관광성이었는지 아닌지도 대수가 아니다. 심하게 말해 보호비 명목으로 상인들 돈을 뜯는 조폭과 다름 없는 것이다. 해외 출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려울 것 없다. 국회의장의 결재를 받아 국회 예산으로 가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게 상식이고 또한 당연하다. 공무상 출장이라면 공무원이든 누구든 소속 기관의 돈으로, 소속 기관장의 책임하에 가는 것을 말한다.
지금 국회의원 전수조사 운운하는 것은 김기식 의혹에 대한 물타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기식 원장의 거취가 정리된 후 시작해도 늦지 않다. 여야가 일단 원칙을 합의하면 된다. 이번 논란을 정치 개혁의 계기로 삼자고 말이다.
서로의 얼굴에 다투어 오물을 던져본들 악취만 진동할 뿐이다. 김기식 원장은 억울할 수도 있다. 과거 다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여야가 같이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등의 항변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디 금융 개혁만이 개혁인가. 뜻하지 않은 유탄이지만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 개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역사에 남을 일이 아닌가. 유성엽, 노회찬 의원 등 이미 국회 내부에서부터 개혁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기식 원장은 빠른 결단으로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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