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누가 아파트값을 올리는가

입력 2018-04-13 00:05:41 수정 2018-05-26 22:42:39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결코 정상적인 시장 상황이 아닙니다." 범어동 아파트값이 심상찮다. 아파트값 이상 급등을 둘러싼 현장의 우려와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범어동 아파트 시장은 극히 드문 거래에도 호가만 치솟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단적인 예가 연말 입주를 앞둔 범어4동 아파트 분양권 매매시장이다. 전용면적 84㎡ 기준 호가가 벌써 9억4천만원대까지 치솟았다. 2015, 2016년 당시 분양가 5억4천만원대와 비교해 불과 1, 2년 새 3억~4억원의 웃돈이 붙었다. 웃돈 규모가 웬만한 비(非)수성구 아파트값과 맞먹는다. 무주택 서민 실수요자로서는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산 등 지방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값만 나 홀로 치솟는 이유는 뭘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범어동 난개발이 주범으로 꼽힌다.

달구벌대로를 따라 범어네거리에서 남부정류장으로 이어지는 범어동 일대는 1980년대 초 아파트 개발과 함께 대구 부동산 시장의 절대강자로 등극했다. 경남타운과 궁전맨션에 이어 덕원고 이전 부지에 들어선 태왕아너스가 대구 고급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동일하이빌, 유림노르웨이숲, 롯데캐슬, 두산위브더제니스 등 대단지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섰다.

문제는 2010년대에 접어든 범어동 아파트 개발 양상이 주변 부동산 가격에 편승한 소규모 난개발과 막무가내식 사업 추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범어동 일대는 지난 수년간 축적돼 온 난개발이 한순간에 폭발하는 모양새다.

각각 179가구, 206가구, 227가구의 3개 소규모 단지가 올해부터 범어동 입주를 시작한 데 이어 3개 분양 사업, 4개 재개발'재건축 사업, 2개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민간개발사업자가 대구 수성구 경신중'고를 현 위치에서 불과 200m 떨어진 범어공원으로 이전하면서 경신중'고 자리엔 40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사업 제안서까지 대구시에 제출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난개발은 결국 범어동 아파트시장 교란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난개발식 새 아파트 분양이 주변 아파트값을 끌어올리고, 주변 아파트값이 다시 입주가 다가오는 새 아파트값 급등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전국 주택시장에 불고 있는 아파트값 조정 국면이 수성구, 범어동에 불어닥칠 가능성을 경고한다. 이른바 난개발 후폭풍이다. 난개발에 따른 공급과잉이 역대 가장 강력한 정부 부동산 규제와 맞물릴 경우 순식간에 집값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범어동, 수성구뿐 아니라 대구 아파트 시장 전반에 대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범어동 난개발은 단순히 아파트 시장을 교란하는 차원을 넘어 '초등학교 과밀화'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범어동 경동초교는 지난해 기준 53학급, 학급당 평균 인원 29명의 과대'과밀학교(대구 평균 23.6명)로 더 이상 학생 추가 수용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그나마 여유 부지가 있는 동도초교, 범어초교는 새 아파트 입주민 자녀를 수용하기 위한 증개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난개발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종합적이고 충분한 고려 없이 토지를 개발함으로써 다양한 도시문제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21세기 도시계획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난개발을 방지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구시와 수성구청은 범어동 사업성에 혈안이 된 민간 개발 사업에 맞서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낙후된 지역 주거환경 개선과 기반시설 확충, 도시기능 회복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도시계획 정책 개발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제라도 도시계획 본연의 역할을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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