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러 와요] 안동민속박물관 '감모여재도'

입력 2018-04-13 00:05:41

어디서든 조상 모실 수 있게 '지극한 효심'

안동민속박물관에 있는
안동민속박물관에 있는 '감모여재도'(8폭 병풍, 너비 324㎝, 높이 154㎝). 안동민속박물관 제공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 있는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 있는 '감모여재도'는 음식까지 그려뒀다.

"안동 정서를 잘 반영해줄 수 있는 건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지요."

'감모여재도'라. 말 그대로 풀면

'조상을 섬기는 마음(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모습이 실제와 같이 나타나는 그림'이다. '휴대용 사당'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사당이 없는 집이나 외지에 나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그림이다.

자세히 보면 그림 속에 사당이 있다. 그림 속 사당이 눈앞에 실존한다는 마음을 지극히 모으면 실제 사당과 진배없다는 것이다. 시험 문제로 '감모여재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맞은 말을 묻는다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리라.

그럴 거면 제사상도 그리고, 제사음식도 그려놓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지엄한 조선의 예법에 주눅이 들어 '그 정도는 아니었겠지' 했는데 음식까지 그려진 '감모여재도'도 있다. 명절 때마다 홍동백서 개념 정리를 비롯해 지짐 사역으로 고역을 치르는 장남과 며느리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어 반길 '팩트'다.

아하, 그래서 500년 전 퇴계도 집집마다 다른 예법에 대해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모름지기 예라는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있는 게 아니다. 조상을 섬기는 후손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퇴계언행록에 기록된 것이구나.

그런데 안동민속박물관에서 본

'감모여재도'는 병풍형이다. 그것도 8폭이다. 들고 다니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선시대 의복 상의에 주머니처럼 생긴 넓고 큰 소매, 전문용어로 '공태'에 최적화된 두루마리 형태일수록 휴대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안동답다"는 박물관 측 설명이 뒤따랐다.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후손으로서 최대한의 격식을 갖춘 것이 8폭 병풍이 아니었겠느냐는 추리였다. 도저히 두루마리 형태로는 제사를 지내기 꺼림칙했을 것이란 추측이었다.

실제 우리지역 박물관 중 '감모여재도'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이곳을 포함해 계명대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 그리고 전국적으로는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있으나 8폭 병풍은 드물다.

'감모여재도'는 태생 자체가 전란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사당은커녕 피란을 떠나 제사가 여의치 않았던 양반들이 전전긍긍한 경험을 바탕으로 짜낸 묘안이 '감모여재도'라는 것이다.

국내 감모여재도 제작 시기를 아무리 일러야 임진왜란 직후인 1600년 이후로 보는 이유다.

일각에선 사당을 건립할 만한 형편이 안 되는 집안에서 간편하게 만든 제례용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느 집안의 감모여재도인지, 왜 드러내지 않는지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전시물들이 구성된 안동민속박물관의 제례 유물로 전시된 '감모여재도'는 1982년 안동시가 시민 J씨에게서 구입한 것이었다. 1992년 안동민속박물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시청 창고 어딘가에 보관돼 있었다. 이런저런 얼룩이 더러 있어 더 골동품 분위기를 풍긴다. 박물관 측도 1800년대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뿐 역시나 정확한 제작 연도는 알 수 없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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