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다크투어리즘
#아픈 역사 간직한 섬
3만명 희생자 기리는 평화공원
당시 초토화된 폐촌 '무등이왓'
관광객 인권 학습장으로 인기
#제주 곳곳 학살 현장
알뜨르비행장 일제 흔적 그대로
보도연맹원 학살당한 셋알오름
끌려가는 곳 알리려 고무신 던져
제주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아름다운 섬'으로 기억되는 제주도는 크나큰 아픔을 갖고 있다. 70년 전 발생했던 제주43사건이다. 지난 2013년 12월 발간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적힌 43사건의 정의는 이렇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제주도는 이 아픔의 역사를 최근 인권평화의 학습장으로 가꾸고 있다. 당시 제주도민의 9분의 1인 3만 명이 희생당한 쓰라린 기억을 잊지 말고 전 국민과 함께 나누자는 것이 취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43 다크투어리즘이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이런 차에 43사건 70주년과 제주 방문의 해를 맞아 제주관광공사가 마련한 2박 3일 일정의 '전국 시도 기자단 제주43 바로 알기'에 참가했다. 한라산, 오름, 바다, 즐비한 맛집 대신 역사 속 현장을 찾아 제주43의 진실을 마주했다.
◆제주43의 진실을 만나는 곳
그간 수차례 제주도를 찾았지만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곳. 바로 제주43 평화공원. 2008년 조성된 이곳에는 1만3천여 기의 위패가 모셔진 참배공간인 위령제단과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대상으로 한 특별공간이 마련돼 있다.
아울러 공원의 핵심시설인 제주43 평화기념관에는 43사건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체험공간 등이 들어서 있다. 최근엔 가족 단위 관광객과 수학여행단 등이 부쩍 늘어나 평화와 인권 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일 이곳에서 열린 43사건 70주년 추념식에는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다.
▷제주43 평화기념관, 제주43 평화공원
-위치: 제주시 명림로 430(봉개동)
-소개: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2008년 조성됐다. 제주43 평화공원 총면적은 39만6천743㎡. 제주43 평화기념관과 위령제단, 위령탑, 추념광장, 위패봉안실, 어린이체험관, 평화의 숲 등의 시설이 있다.
◆숨죽이며 흐느낀 질곡의 터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는 제주43의 깊은 상흔이 밴 곳이다. '무등이왓'은 옛 마을의 흔적을 통해 43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43사건 당시 초토화돼 폐촌이 된 무등이왓은 집터와 팽나무, 대나무 등만이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려준다. 이곳에는 최근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판들이 곳곳에 붙어 있어 43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인근 '큰넓궤'는 제주43의 참극을 알린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의 촬영지다. 동광리 주민 120여 명은 1948년 겨울 60일 동안을 캄캄한 굴속에서 토벌대의 눈과 귀를 피해 살았다. 안전모에 장갑, 휴대등까지 착용하고 들어가 본 동굴 속에는 당시 주민들의 공포와 슬픔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민들이 살았던 곳까지는 좁은 통로여서 포복하다시피 기어들어 가야 하는 등 안전 문제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무등이왓(무동이왓)
-위치: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230번지 일대
-소개: 300여 년 전 마을이 이뤄졌으며, 주민들은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무동이왓이라는 지명은 지형이 '춤을 추는 어린이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됐다. 그러나 1948년 11월 초토화 작전 이후 뿔뿔이 흩어져 숨어 살던 주민들이 하나둘 토벌대에 희생돼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동광 큰넓궤
-위치: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90번지 일대
-소개: 동광리의 큰넓궤와 도엣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이다.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중산간마을에 대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면서 동광리 주민 120여 명이 이 동굴 속에서 2개월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다.
◆억울한 주민들의 학살터집단묘지
제주 곳곳은 학살현장이다. 지금은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지만, 제주43 유적지도를 보면 어느 한 마을이라도 학살이 없었던 곳이 없다. 모슬포 일대에는 옛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가 2차 세계대전의 최후 결전지로 제주를 택하고 군사 요새로 바꿔놓았기 때문. 대표적인 군사 진지가 알뜨르비행장이다. 이곳에는 10여 개의 소형 전투기 격납고가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비행장으로 넘어가는 길인 셋알오름에는 대공포 진지도 있다. 알뜨르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였다.
섯알오름에는 제주의 2차 학살에 해당하는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다. 1950년 7월에서 8월 사이에 전국에서 예비검속하여 학살을 자행했다. 모슬포경찰서에 검속됐던 이들은 이곳으로 끌려와 학살당했는데, 새벽에 트럭을 타고 이곳으로 오던 이들은 길에 고무신 등을 차 밖으로 던져 자신들이 끌려가는 곳을 가족에게 알렸다고 한다.
이들 오름에서는 차롱 도시락이라는 제주만의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대나무를 잘게 쪼개 납작하게 만든 제주 전통그릇에 담아 먹는 음식은 제주의 아픔을 느끼게 해준다.
▷셋알오름, 섯알오름, 알뜨르비행장
-위치: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597-3번지 일대
-소개: 섯알오름은 알오름으로 동쪽에는 동알오름, 서쪽에는 섯알오름, 그 사이 셋알오름이 위치하고 있다. 43사건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학살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탄약고, 격납고 등의 시설도 있었다. 섯알오름 서쪽에는 일제 강점기의 흔적인 알뜨르비행장을 볼 수 있다. 일제가 파놓은 벙커(bunker)도 남아 있다.
▷차롱 도시락
-소개: 차롱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납작하게 만든 제주 전통그릇이다. 43사건 당시 작은 굴에서 며칠에 한 번씩 밥을 해서 차롱에 담아 끼니를 이어갔다고 한다. 현재 차롱은 서귀포시 호근동 마을노인회에서 손수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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