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속으로] 쌍둥이 다문화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

입력 2018-04-11 00:05:00

친자식 입학 위해 출생증명서 위조…아내 불법체류자 신분 탓에 동생 부부 앞으로 출생신고

지난달 29일 대구 동부경찰서 수사과. 남루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굳은 얼굴로 조사석에 앉았다.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조사를 받으러 온 A(48) 씨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정상적으로 보내고 싶어 마음이 급했습니다." 담당 수사관의 추궁에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수사관의 손에는 정교하게 위조된 출생증명서가 들려 있었다.

A씨가 쌍둥이 딸들의 출생신고를 하려고 대구 동구 한 주민센터를 찾은 것은 지난달 6일. 아이들이 태어난 지 6년이나 흐른 뒤였다. 서류를 검토하던 동구청 직원은 A씨가 제출한 출생증명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울의 한 여성병원 직인이 찍혀 있을 정도로 정교했지만, 쌍둥이 자매의 출생시각이 분 단위까지 같고 복사한 흔적이 있는 등 위'변조를 의심케 하는 흔적이 눈에 띄었다. 수상하게 여긴 직원은 해당 병원에 문의해 '산모의 진료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초 경찰은 A씨가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출생신고를 하려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각종 보조금을 타내고자 계획적으로 가짜 출생신고를 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다. 그러나 아이들은 실제로 A씨의 딸이었다.

A씨는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운 가족사를 털어놨다. A씨는 지난 2011년 일하던 공장에서 필리핀인 아내 B(33) 씨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B씨는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가 된 상태였다. 두 사람은 결혼식은커녕 혼인신고조차 못 한 채 함께 살았다. 이듬해 보석 같은 쌍둥이 자매를 얻었지만, 아내의 불법체류자 신분 탓에 동생 부부 앞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시간이 흘러 아내는 불법체류자의 굴레를 벗었고, 지난 2016년 부부는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두 딸은 가족관계등록부상 여전히 동생의 자녀로 돼 있었다. B씨는 필리핀에서 결혼했다가 헤어진 남편이 있어 서류상 걸림돌이 많았다. 동생 부부가 자신들의 자녀가 아니라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했지만, 출생증명서 없이 출생신고를 하려면 또다시 지루한 소송을 이어가야 했다. 쌍둥이가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내년까지는 시간이 빠듯했다.

궁지에 몰린 A씨는 인터넷에서 증명서 위조 브로커를 찾아냈다. A씨는 브로커에게 80만원을 주고 출생증명서 두 장을 샀다. "배움이 짧은 저와 달리 아이들은 어떻게든 제대로 교육받게 해주고 싶어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는 기름때 묻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경찰에 진술했다.

동부경찰서는 A씨를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입건했다. 또 인터넷을 통해 A씨에게 위조 출생증명서를 판매한 브로커를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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