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전시(展示) 재판

입력 2018-04-07 00:05:00 수정 2018-10-12 09:21:59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1936∼1938) 중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전시(展示) 재판'이 열렸다. 1936년 8월 1차 재판에는 혁명 1세대인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등 16명이, 1937년 1월과 5∼6월의 2차에서는 퍄타코프 등 경제전문가 등 17명과 종심(縱深)작전' 이론을 개발한 천재전략가 투하쳅스키 원수 등 군 간부 8명이, 1938년 5월의 3차에서는 '부자 되세요'(Enrich Yourself)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한 부하린을 포함, 모두 21명이 회부됐다.

이들의 혐의는 천편일률이었다. 트로츠키와 공모해 스탈린과 당 지도부 인사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거나, 사보타주로 경제활동을 파괴하거나, 파시스트 국가와 내통했다는 것이었다. 모두 날조됐기 때문에 스탈린은 이를 '사실'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자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처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음모'가 실재(實在)한다는 것이 입증돼야 했다.

전시재판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는 꽤 효과가 있었다. 러시아로 망명한 독일 소설가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심경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카메네프 등에 대한 1차 재판은 의심의 눈길로 바라봤다. 피고들의 죄상이 터무니없어 보였고 자백서 역시 날조된 것 같았다.

그러나 퍄타코프 등에 대한 2차 재판을 지켜보고서는 달라졌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들으며 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직접 보니까 내가 보고 들은 증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의심했던 마음은 물에 소금이 녹듯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없어졌다." 당시 소련 주재 미국 대사였던 조지프 데이비스도 마찬가지였다. "퍄타코프의 진술은 감정이 배제돼 있고 논리적이었으며 자세했다…그가 절망한 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을 보고 유죄임을 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TV로 생중계됐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강력히 거부했으나 법원은 '공공의 이익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생중계를 결정했다. 생중계로 공공의 이익이 얼마나 증진됐는지도 궁금하지만 이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는 박 전 대통령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중립적이었던 사람들이 TV에 의한 공개재판을 보고 어느 쪽으로 생각이 더 기울어졌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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