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사랑에 '배부른' 연극
#1.
"반응이 늦어요. 조명은 페이드인으로 해주시고요. '됐어, 이제 치우자'는 '나눠 치우자'로 바꿉시다."
지난달 26일. 경북연극제 출품작 '이웃집 쌀통(원작: 그녀들만 아는 공소시효)' 연습 중이던 배우 넷. 유월옥(50·여), 김미영(31·여), 이혜정(31·여), 김주향(31·여).
#2.
"잘 보셨어요? 피드백 좀 부탁드려요."
연극 평가 요청이었다. 평을 듣더니 곧바로 짧은 회의에 들어갔다. 관객 반응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고치고 또 고쳤다. 쌀을 깎고 또 깎아 부드러운 맛을 냈다는 막걸리보다, 읽고 또 읽어 고쳐 출간한다는 소설보다 더 많은 도정이, 퇴고가 이어졌다.
★ 연극은 배고프다?
대구경북서 장기공연 계획
단원들 모여 공동작업으로
주부·청소년·창작극 무대
★ 나도 도전해볼까!
캐디 일하다가 다시 무대로
흥미 느끼는 사람 모두 환영
연극 통해 상담·치료도 목표
◆무대로 돌아오다
"식은땀이 났어요. 연극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고 답하지 못했죠."
김주향 씨는 골프장 캐디로 일하던 10년 전쯤 배우 손숙 씨와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연극배우로 존경하던 이를 눈앞에서 봤지만 손 씨가 웃으며 던진 "뭐 하다 왔어?"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기억이었다.
연어가 바다로 나갔다 강으로 돌아오듯 이들에게 무대는 본래의 자리였다. 장난삼아 주고받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보다 "무대로 돌아왔다"는 표현은 적확했다. 무대는 소중함을 넘어선 어떤 것이었다.
웹디자이너, 커피숍 서빙, 호프집 서빙, 헬스보조제 판매원, 텔레마케터, 골프장 캐디, 선거사무소 경리까지. 불타던 열정을 꺼뜨린 것도 생업이었지만 열정의 불씨를 살린 것도 생업이었다. 무대를 떠나 있던 기간 이들의 눈물 연기는 일취월장했다. 상사의 기분을 살피고 실적을 맞추다 분노, 좌절, 체념, 공허 등 개념으로만 분류하던 감정선을 보다 현실감 있게 구분하게 됐다. 노하룡(50) 삼산이수 대표는 "대학로 극단과 우리는 지향점이 다를 뿐 연기력이 뒤지진 않는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연극은 삶의 목적이자 수단이지, 돈과 명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돈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법. 유일한 방법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했다. 연극제 입상으로 입소문을 타면 더 좋다. 입상 상금도 받고 입소문은 관객몰이도 된다. 질 높은 작품을 위해서도, 배우들의 연기를 위해서도 관객의 관심과 평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이들은 지역극단의 작품을 대구경북 전역에서 장기 공연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천에서 했던 공연을 포항에서도, 대구에서도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자는 것이었다. 소극장들이 연합해 의미있는 움직임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실제 극단의 의무이자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방식은 매년 고정적으로 연극 무대를 여는 것이다. 삼산이수도 1년에 3편 이상 무대에 올리고 있다고 했다. 주부극단, 청소년극단이 각 1편씩. 그리고 기존 멤버들이 창작극 1편씩을 올리고 있었다.
극단 삼산이수의 킬러 콘텐츠는 '그냥 갈 수 없잖아'라는 작품이라 했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작품인데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한국연극베스트작품상을 받았다. 지난해 최고의 연극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작품 제작 과정이 독특했다. 불세출의 작가가, 천재적 신인 작가가 만든 작품이 아니었다. 공동 작업이라고 했다. 추풍령삼거리에 실제로 있었던 주막 이름인 '그냥 갈 수 없잖아'에서 역사적 의미를, 이야기를 끌어오고 붙였다. 오롯이 단원들의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소소하지만은 않아
삼산이수의 시작은 1994년이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경북연극제에서 단골 수상 극단이 됐지만 처음은 소소한 바람에서 시작됐다. 아이들이 연극 한 편 못 보고 졸업한다는 게 안타까워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것이었다.
지금은 소박하지 않다. 소극장 운영과 공연, 예술 교육도 겸한다. 지역문화에 버팀목이 되겠
다는 것이다. 연극 공연과 관련한 부가가치 산업으로 연극 상담, 연극 치료도 목표로 삼고 있다.
삼산이수의 공연 교육으로 배출한 배우가 앞서 등장한 유월옥 씨다. 그녀는 주부연극교실 1기생이다. 7년간 삼산이수에서 연극을 배우고, 즐겼고 '이웃집 쌀통'에서 순이네로 열연해 경북연극제에서 기어이 우수연기상을 거머쥐었다.
자기 내면을 찾아가는 길을 연극으로 찾고 있다는 그녀는 취미로 연극을 한다면 진실을 맛보기 어려울 것이라 조언했다.
"'재미있겠다. 나도 가면 안돼?'라는 분들, 모두를 환영한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연극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무대에 오르려면 자기 시간을 내야하고 노력해야 한다."
삼산이수는 다음 문구를 기사에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남성 배우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당신, 무료한 일상으로부터 탈피를 원하는 당신, 넘치는 끼와 재능이 주체가 안 되는 당신, 자신감과 사회성을 기르고 싶은 당신, 연극이란 무엇일까 궁금한 당신. 054)439-8245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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