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나

입력 2018-04-05 00:05:00 수정 2018-08-02 17:42:18

배성희 고려야마하 피아노 대표

2006년 1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 당시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형 임동민과 나란히 공동 3위를 차지했다. 당시 나도 우연찮게 그 옆에 앉았다. 아담한 체격임에도 당찼던 임동혁의 첫인상을 보고, '어떻게 이런 친구가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우연 같은 그 만남 이후 대구와 연고 하나 없는 임동혁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나는 임동혁의 대구 방문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안부전화를 했다. 임동혁은 대구에 오면 반드시 나를 찾았고, 술과 차를 같이 마시는 사이로 됐다. 2006년 10월 대구에서 열린 '야마하 그랜드페어' 초청 때는 나흘 동안 동고동락했다. 임동혁과의 12년 우정은 이제 스타와 열렬한 팬의 관계임과 동시에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몇 년 전에는 임동혁이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도 봤다. 그는 음악인의 여러 고충을 토로하며, 최고의 반열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호소했다. 참 고마웠다. 그토록 나를 가까운 사이로 생각했기 때문에 속마음까지 토로했으리라 생각한다.

올해 3월 10일에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독주회가 열렸다. 세계 3대 콩쿠르라고 불리는 '쇼팽', '퀸 엘리자베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모두 입상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바로 자랑스러운 내 동생 임동혁이다. 그가 힘들어했던 모습까지 봤기 때문에 이 독주회를 보는 내내 스스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대구 독주회에서 그가 선보인 레퍼토리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작품들이었다. 피아노 음악 역사에서 등장하는 주요 작곡가들 모두를 섭렵한 임동혁이지만 지금껏 쇼팽을 비롯한 정통 낭만파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고전적인 절제가 필요한 슈베르트의 작품들을 선택해 차분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서정성을 표현했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 으로 알려져 있지만 31년이란 짧은 삶을 살면서 소나타를 포함한 방대한 피아노 작품들도 남겼다. 슈베르트의 음악세계는 그의 가여웠던 인생 만큼이나 가득한 고독함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날 임동혁의 연주는 피아니스트가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무대 위 고독감'을 매력적인 독백으로 만들었다.

스타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무대였지만, 이날 음악회는 그를 잘 아는 나에게 한층 성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옆에 앉아서 보던 아내의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니 확실하다. 아내는 연주가 끝난 후 로비에서 임동혁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나를 보며 경의로운 표정을 지었다.

잠시 나의 개인사를 얘기하면, 젊은 시절에 아쉽게도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접었다. 하지만 음악 관련 사업을 하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절친이 되면서, 이 봄 대구콘서트하우스 로비에서 아내에게 새삼스러운 점수도 땄다. 이후 한동안 아내가 차려준 나의 식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