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의 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여행] (12)북큐슈-벳푸·유후인

입력 2018-03-31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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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만 20km…지옥 고갯길 넘다 숨 넘어갈 뻔

벳푸에서 유후인을 잇는 616번 국도. 저 뒤에 보이는 산을 넘어야 한다.
벳푸에서 유후인을 잇는 616번 국도. 저 뒤에 보이는 산을 넘어야 한다.
벳푸역 뒤쪽 한식당 \
유후인역에서 긴린코 호수 사이에 줄지어 있는 상점들.
벳푸역 뒤쪽 한식당 \'친구\'를 운영하는 한일 부부. 남편이 한국인으로 일본에 거주한 지 약 22년이 되었다고 한다.
유후인역에서 긴린코 호수 사이에 줄지어 있는 상점들.

미야자키(宮崎) 라이딩 내내 나를 괴롭혔던 지긋지긋한 비를 뒤로하고 온천의 본고장, 북규슈 오이타로 향한다. 약 210㎞, 신칸센으로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웬걸, 열차 한 칸을 전세 냈나?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달랑 나 하나다. 차창 밖 사진도 찍고 다리도 펴고 자리도 이리저리 옮겨가며 온갖 호사를 누린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거듭난 북규슈 중심도시, 오이타시

오이타시(大分市)는 인구 50만 명 정도로 북규슈의 중심 항구도시다. 시들어가던 도시가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역동적으로 살아나고 있는 곳이다. 사실 인천-오이타 비행기가 뜨고 있지만 벳푸(別府), 유후인(由布院) 등을 가기 위한 경유지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본섬인 혼슈로 가는 페리들도 드나드는 교통, 무역, 철강의 요충지다. 오후를 지난 시간에 중앙역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조립한다. 이골이 날 때도 되었는데 자전거를 풀고 추스르고 다시 조이는 번거로운 일은 늘 성가시고 힘들다. 해 지기 전에 오늘의 목적지인 벳푸로 부리나케 가야 한다. 여기서 벳푸는 15㎞ 정도로 금방이다. 벳푸로 향하는 길은 죄다 해변길이니 경치야 시원스럽지만 그다지 낭만적이지는 않다. 왕복 10차로는 될 듯한 광폭도로를 차들이 질주하는 탓이다. 일본답지 않게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덜컥 겁이 나 평소와는 달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도로 천천히 간다.

저 멀리 벳푸시가 보인다. 딱 봐도 한눈에 다르게 느껴진다.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난다. 온천의 열기가 땅 위로 솟구친다. 인근 지역의 온천만 2천600개가 넘는다 하니 도시가 멀쩡한 게 신기하다. 연기가 훅 다 빠져나와 금방이라도 꺼져 버릴 것 같다. 일단 벳푸역으로 향한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항상 중앙역부터 찾는다. 일본의 대다수 도시는 역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방사상처럼 발달해 있다. 자는 것, 먹는 것, 사는 것 모두 역 근처에서 편리하게 해결된다. 깨끗하고 정갈하다. 평소 우리가 가진 역 주변의 더럽고 우중충한 선입관과는 딴판이다.

숙소를 찾아야 하기에 휴대폰을 만지작대는데 일본 신사가 도와주겠다고 한다. 덕택에 좋은 잠자리를 구했다. 내일은 업힐만 30㎞인 벳푸지옥과 유후인을 가야 하기에 일찍 몸을 추스른다.

내리 4일 동안 생존을 위해 입에 안 맞는 일본 음식으로 배 속을 채웠더니만 매운 김치가 간절하다. 호텔 프런트에 부탁하였더니 한식당 '친구'를 추천해 준다. 어떻게 아느냐 물으니 자기도 가끔 한식을 즐긴단다. 태어나서 가장 맛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로 소주를 곁들여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일본으로 건너온 지 22년 되었다는 주인은 신기하게 쳐다본다. 모 종교의 신앙이 매개체가 되어 국제결혼을 하고 느닷없이 전도사 자격으로 일본에 왔다고 한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숨겨 놓은 듯한 고향 이야기를 주섬주섬 풀어놓았다. 이야기가 실타래 같다. 같이 식당일을 돕고 있는 일본인 아내를 쳐다보며 밥은 먹고산다며 싱긋 웃는다. 바이크족들은 가끔 봤지만 자전거를 타고 벳푸까지 오는 한국인을 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고 한다. 오늘 이곳 방문이 한국의 신문에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크게 웃으며 음식 맛있게 한다고 자랑 좀 해 달라고 한다. 서비스도 듬뿍 준다고.

◆업힐의 시작 벳푸 지옥순례, 명반 유노하나 재배지

벳푸의 업힐이 시작된다. 이곳 온천의 대부분은 산허리 위에 위치한다. 벳푸 지옥온천으로 향한다. 분출되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이 힘들다 하여 '지옥'이라 부른다. 벳푸에는 바다, 가마도, 피의 지옥 등 용출수에 따라 제각기 이름 붙여진 8개의 온천이 있다. 이 8개의 온천을 돌아가며 투어하듯 순례한다 하여 '지옥순례'(지코쿠메구리)라고 부른다.

앞의 전망도 즐길 틈 없이 계속 페달을 밟아대며 업힐이다. 4㎞ 가파른 길이 계속된다. 입장료가 400~2천엔 정도인 지옥순례의 호사는 뒤로하고 인근 카페에서 잠시 쉬며 작전을 짠다. 늦지 않은 시간에 유후인에 도착해야만 후쿠오카 출발 오후 8시 비행기로 귀국길이 가능한데 머리가 복잡하다. 유후인 가는 길은 다소 완만한 길로 둘러가면 32㎞, 힘겹더라도 곧장 지르면 24㎞ 정도다. 어디로 가든 1,580m 유후다케(由布岳)가 가로막은 산허리를 넘어야 한다.

결정은 났다. 다소 가파른 길을 가기로 한다. 굵고 짧게 간다. 여기서부터 쉼 없는 오르막만 줄곧 20㎞ 정도다. 다행인 것은 유후인 산자락은 줄곧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라 넓디넓은 평원지대도 펼쳐져 있어 한 가닥 위안을 삼는다.

우선, 가파른 언덕길을 약 4㎞ 정도 올라 유노하나 재배지로 이름 높은 명반 온천지구에 도착했다.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유황 성분을 압축하여 입욕제로 만든다고 한다. 유황의 엑기스로 만든 유노하나는 각종 피부 관리에 효험이 있다 하여 인기가 많다. 짚으로 에워 싼 큰 찜통들이 이색적인 모양으로 널려 있다. 대형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국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다. 선글라스를 낀 멋을 잔뜩 부린 여성들은 딱 봐도 한국인이다. 세계 전 지역 공통이다. 어딜 가나 한국 여성들의 패션은 한눈에 돋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오셨어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눈을 동그랗게 하고 연신 신기해한다. 조금 어깨에 힘을 주고 산을 넘어 유후인으로 간다고 얘기한다. 헛자랑은 딱 여기까지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홀로 라이딩으로 유후다케를 넘어 유후인으로 가야 한다.

◆업힐 그리고 고원 평야의 광활함이 주는 자유로움

명반 온천지구에서 유후인 가는 길은 외길이다.

가져간 음반을 크게 틀어놓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페달질만 한다. 숨이 턱에 걸려 다리가 후들대면 잠시 목을 축인다. 끝 간 데의 자유랄까. 이 산을 넘어가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작은 언덕을 넘는다. 오이타 국도 616번 루트이다. 1,580m의 유후다케가 눈앞에 펼쳐진다. 3월인데도 산허리까지 새하얀 눈이 눈부시다. 마치 품속에 안기듯 쑥 다가온다. 이 광활한 평야에 저 큰 산을 온전히 홀로 가진 듯하다. 그 낭만도 잠시. 또 다른 언덕을 넘어야 한다. 산 정상쯤 오르니 총소리가 들린다. 이게 뭐지. 통제 표지도 있다. 군사시설인 듯 보이기도 한다. 몇 개의 산과 언덕을 넘었는지 모르겠다. 간혹 달리는 차들 외에는 인기척이란 하나도 없다. 은근히 겁도 난다. 날씨가 청량하니 다행이지 만에 하나 바람 불고 흐린 날이었다면 주저앉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후다케는 힘듦만 주는 게 아니다. 때론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과 들꽃밭도 선사하였다. 때때로 목 터져라 노래 부르며 유후다케를 완전히 즐겼다. 이런 큰 행운을 선사한 두발 자전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런 산중 오르막도 고장 없이 잘 버텨주니 한층 대견해 보인다.

◆유후다케를 품고 사는 아름다운 도시, 유후인

끝이 없을 듯 보였던 업힐이 지루해질 즈음 저 멀리 유후인의 낌새가 느껴진다. 지금부터는 쾌도난마의 내리막이다. 종종 힘들게 올랐던 팔공산 한티재 길을 내려올 때와 비슷한 쾌감을 선사한다. 신바람 나는 다운힐이다. 붙는 가속도에 오히려 겁이 나 브레이크를 잡고 속도를 줄인다.

마침내 유후인에 도착했다. 유후인은 아늑한 분지 지대이다. 도심지라 해봤자 4~5㎞ 남짓이다. 인근에 온천지대와 고급 료칸들이 많다. 굳이 비유하자면 벳푸는 서민들이 찾는 온천지, 유후인은 좀 먹고사는 사람들이 찾는 여행지 정도랄까. 인근에 품격 골프장들도 조성되어 고원 골프가 가능하다.

잉어가 물 위를 솟아오를 때 비치는 비늘 빛에 연유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긴린코 가는 길은 늘 인파로 북적인다. 자전거로 긴린코(金鱗湖)호수 길을 나섰다가 인파에 파묻혀 포기하고 돌아나왔다. 수년 전에 방문한 기억을 되살리기로 하였다. 맞은편 긴린코호수를 감상하기에 적합한 텐소신사(天祖神社) 가는 길도 북새통이기는 매한가지다. 이 작은 마을 도시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비결이 무엇인지 부럽기도 궁금하기도 하였다. 온라인상에서 조금이라도 알려진 가게들은 줄지어 선 사람들 때문에 입맛을 다시며 눈팅만 했다.

유후다케를 두 바퀴로 홀로 넘었다는 뿌듯함을 뒤로한다. 이제 후쿠오카로 돌아가야 한다. 30분마다 출발하는 버스는 빠른 속도로 매진된다. 겨우 한 장 구한 버스표에 자전거를 실어야 한다고 하니 난색을 표한다. 온갖 불쌍한 시늉을 하며 앞'뒷바퀴 분리하고 폐 끼치지 않겠다니 못 미더운 척하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후쿠오카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완전한 평화로움과 가슴속 꽉 찬 보람으로 채워져 있다. 하나의 방점을 또 찍었다는 뿌듯함이랄까.

이제 규슈의 마지막 일정인 나가사키(長崎), 운젠(雲仙), 구마모토(熊本)를 기약한다.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toursk@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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