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잃은 엄마 요구는 '정의구현'
*해시태그: #미투영화 #실화영화는 아님
*명대사: "분노가 분노를 낳는다"
*줄거리: 주인공들은 화로 가득 차 있고 종종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 안 되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분노는 분노를 낳고 화염처럼 번져간다. 어찌하여 미주리주에 주민들은 이토록 분노로 가득 차게 되었을까?
영화는 미국 미주리주 에빙이라는 도시의 외곽에 허물어져 가는 빌보드 광고판 3개를 바라보며 시작한다.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라는 영화 원제 그대로다. 여기서 '에빙'이라는 도시는 허구의 도시다. 사실적인 내용과 현실감 넘치는 묘사로 실화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스토리는 마틴 맥도나 감독이 직접 쓴 것으로 픽션이다.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이 빌보드는 왜 사용이 중지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빛바랜 광고가 찢긴 상태로 인적 드문 길가에 버려져 쓰레기처럼 보인다. 이 빌보드는 에빙, 미주리주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단숨에 가늠할 수 있는 단서와도 같다.
이 빌보드를 눈여겨보던 중년 여성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는 광고판 3개를 임대하기로 한다. 그리고 '죽어가며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이라고 직접 광고를 내건다. 밀드레드는 7개월 전 끔찍한 강간 살인사고로 죽은 안젤라의 엄마다. 딸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하는 공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반발 표시로 빌보드를 직접 사서 이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겠다는 것이다. 밀드레드는 '윌러비 서장'이라고 경찰 서장의 이름까지 직접적으로 명시하며 본격적인 복수에 나선다.
처음 광고를 낼 때만 해도 밀드레드가 원하는 바는 명확했다. 바로 정의 구현. 부디 경찰들이 범인을 잡아 죗값을 치르게 하고 이 극악무도한 사건을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 정도는 딸 잃은 엄마로서 투쟁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에 정의를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범죄자가 뻔뻔하게 세상을 활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범죄를 방조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이상하게도 경찰과 밀드레드의 대결구도로 흘러가게 된다. 밀드레드의 입장에서 경찰은 무능하고 나태하며 인종차별만 일삼으며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경찰 서장 윌러비는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다며 광고를 내려줄 것을 원하지만 밀드레드는 그의 최선을 믿을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플레시백이나 경찰의 차후 수사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생전 딸의 모습을 보여주는 회상 장면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장면은 딸 안젤라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항심 가득한 사춘기인 안젤라와 밀드레드는 차 문제로 부딪혔고 밀드레드가 차를 빌려주지 않자 안젤라는 '걸어오다가 강간이라도 당하면 속이 시원하겠어'라는 말을 뱉으며 집을 뛰쳐나간다. 하필 그날 사고가 났으니 엄마로서의 죄책감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편 세 개의 광고판은 이 작은 마을을 발칵 뒤집는다. 관심도 가지지 않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니 밀드레드가 원했던 바에 반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광고로 인해 밀드레드의 편이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된다. 평소 덕이 많고 모범스러웠던 윌러비 서장을 걸고넘어진 것이 반발을 낳는다. 윌러비 서장이 췌장암 말기라며 동정을 구하며 광고판을 내려달라고 부탁하지만 분노한 밀드레드에게는 어림없다. 밀드레드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민심은 노골적인 문구로 마을을 흔들어놓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메시지는 타당했으나 표현 방식에 있어서 거부감이 들자 사람들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 맥도나 감독은 이 같은 군중 심리를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 이 과정 중 윌러비 서장은 자살을 하고 윌러비 서장의 자살은 밀드레드와 관계없이 췌장암 때문이지만 그를 따랐던 하급 경찰 딕슨(샘 록웰)은 엇나가게 된다. 딕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남부 악질 경찰이다.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동성애 혐오주의자이며 게다가 알코올 중독자다. 늘 술에 취해있던 그는 서장이 자살하자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를 한다. 광고판 관리업자를 찾아가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창밖으로 던져버린 것. 도대체 무슨 논리로 복수한 것인지 보면서도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 비이성적인 캐릭터 딕슨도 이 사회에서 마주칠 수 있는 군상 중 하나이리라.
얼핏 보면 딕슨은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의 멍청한 희생자 같아 보인다. 반면 정의 구현에 나선 밀드레드는 잔다르크 같은 영웅처럼 보인다. 하지만 맥도나 감독의 영화 캐릭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두 캐릭터는 모두 결점을 가지고 있고 이 결점으로 인해 사건이 생기고 이야기의 전말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이 엎치락뒤치락한다.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화합하지 못할 것 같던 두 사람도 끝내 한길을 향해 떠나게 된다. '분노가 분노를 낳는다'라는 극 중 대사처럼 '분노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비이성적인 군중 심리에 휩싸이는지 '쓰리 빌보드'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