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地選 공천 인재난] TK 광역의원 신청자 80% 정계 출신…참신한 청년·여성 외면

입력 2018-03-28 00:05:00

대구 기초단체장 5곳 전략공천…"국회의원 입맛대로" 뒷말, 지역 정치권 후진성 부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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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6'13 지방선거를 국면 대전환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내우외환이 불거지면서 당 안팎에서는 더 절망적 상황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홍준표 당 대표와 한국당 지방선거 시'도당 공천관리위원장들이 이달 5일 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경북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들은 6'13 지방선거 공천 신청자 명단을 받아들고 '이 사람이다'라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후보자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인 다른 지역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지역 발전 비전을 갖춘 참신한 인재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탓이다. '풍요 속의 빈곤'인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지렛대 삼아 보수 재건의 기틀을 닦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정작 튼튼한 바닥이 되어줄 인재 기근은 한국당의 미래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

◆국회의원 입맛대로 공천?

공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대구시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대구 8개 구'군 기초단체장 중 5곳을 전략공천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전략공천지역은 더 늘 수도 있다.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공관위가 고심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으나 공천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실한 공식이 있다. 전략공천지역의 경우 국회의원이 1명인 단수 선거구라는 사실이다. 이는 '국회의원의 선택이 곧 공천'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선지역으로 분류된 남구는 국회의원이 중구와 남구 등 두 곳의 공천권을 쥐고 있어 두 곳 모두 전략공천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관측이 많다.

국회의원이 2명 이상인 지역, 즉 수성구와 달서구 등 복합선거구는 공교롭게도 경선지역이 됐다. 특히 국회의원이 3명 있는 달서구는 그만큼 의원들의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려워 일단 경선을 치르기로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공천 방식에 지역민의 여론이 파고들 틈이 과연 있었을까? '국회의원 입맛대로 공천'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특히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이 '공생' 관계를 형성, 신인 정치인의 진입을 막는 '차단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공천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 줄을 잘 타야 한다. 관계가 좋지 못하면 공천에서 배제되고, 다음 총선에서 그 국회의원의 적진에서 타 후보를 도와 새로운 줄을 만들어야 한다. 인적 관계가 능력'비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 이런 악순환은 매번 선거에서 반복되고, 지역 정치권의 후진성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행 정당 공천제도는 젊고 다양한 신진 세력이 진출하기 어렵다. 인적 쇄신에 실패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러한 폐해를 극복하려면 정당이 인재추천제 등을 도입해 공천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당이 인재풀을 공개하고 언론과 시민단체가 이들을 검증, 지역주민이 추천하는 방식으로 공천이 이뤄진다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릴 새로운 엘리트가 탄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역인재 씨가 말라간다

공천 신청자 서류 및 면접 심사를 끝낸 대구시당 공관위는 26일 중간브리핑을 통해 242명 중 10명을 당규, 중앙당 공관위 의결 부적격 기준의 이유를 들어 공천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01년 이후 음주운전 3회 이상 ▷2001년 이후 벌금 100만원 이상 범죄 3건 이상 ▷공무원의 경우 재직 중 범죄를 저지른 자 ▷5회 이상 범죄경력이 있는 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에는 기초자치단체장 신청자 2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적격 기준에는 들지 않았으나 범죄경력이 있는 공천 신청자도 제법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이 자질과 도덕성의 평가 기준을 강화한 까닭도 있겠으나 이런 경력의 소유자가 공천을 신청했다는 자체가 한국당의 격을 보여준다는 말이 지역 정가에서 나온다. 일부 선거구에서는 추가 공모를 통해 참신한 인재가 들어오기를 바라보지만 큰 기대는 걸지 않고 있다.

공천자 발표 마감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당협위원장들은 최상의 공천이 아닌 차선의 공천이라도 하자고 마음먹지만 이름표에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A국회의원은 "지역과 당에 대한 헌신, 비전 등의 항목을 살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다. 욕을 들어먹을 각오로 전략공천이라도 하고 싶지만 외부 영입은 엄두도 못 내고 그나마 신청자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비슷한 점수의 신청자뿐이어서 선택이 어렵다. 또한 경선으로 뽑자니 주민들에게 선택의 짐을 던지는 것 같기만 하다"고 했다.

◆다양성 실종이 더 큰 문제

'꽂으면 당선' 인식이 '패거리 정치풍토'를 만들었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그 폐해가 고스란히 반복돼 지역 정치권의 다양성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대구경북 광역의원 공천 신청자의 80%에 육박하는 직업군이 정계다. 전'현직 기초의원, 광역의원이 대부분이고 당직을 걸쳐 놓은 인사도 부지기수이다. 주민과의 교감을 통한 풀뿌리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문화'체육'언론'의료'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의회나 기초자치단체에 포진하거나 그런 시도가 있어야 하나 정치권 인사의 전용통로가 돼버렸다. 지역 정가 한 관계자는 "공천을 받으려면 당 주변에서 기웃거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천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을 갖췄더라도 잘못 보이거나 소위 '줄'을 잘못 서면 평생을 기웃거리기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정치문화는 청년, 여성, 신진 인사의 진출을 차단하고 인재 풀을 채우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번 공천 신청에서도 여성과 청년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이들은 당의 청년'여성 확대 공천을 하나의 '쇼'라고 보고 있다. 실제 경북도당이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젊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겠다며 도의원 여성 비례대표 후보 공모를 대대적으로 추진했으나 참여자 부진으로 올 1월 모집기간을 2개월 더 늘려 진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관심 자체가 떨어져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대구시당은 아예 이번 선거 기초단체장 공천에 있어 여성'청년'장애인 우선추천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구에서는 3차례 여성 공천을 했으나 결국 그가 다른 정당으로 가 버려 의미를 잃었다는 까닭이라고 이유를 내건다.

청년의 진입 장벽 또한 높다. 보수색이 강한 대구경북에서 젊은이들이 발언권을 얻기는 쉽지 않다. 한 의원 보좌관은 "당협 회의에서 40대 당원이 당협 운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 한 어르신이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어디 끼어드느냐'며 타박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정성적 평가보다는 정략적 평가도 신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정치지망생은 "정치는 돈이다. 그게 원활하지 못하면 몸으로 때워야 하는데 직장생활 등 생계에 많은 시간이 묶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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