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개헌안을 발의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거의 전부가 하야, 피살, 수감, 자살, 탄핵 혹은 가족과 측근 비리로 엉망이 됐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다수 국민들이 '개헌'을 원했던 것은 '권력을 분산해 제왕적 대통령의 비극을 끝내자'는 공감에서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 개헌안에서 권력 분산 의지를 찾기는 어렵다.
청와대는 개헌안에 대해 '대통령 권한을 상당히 내려놓았다'고 자평한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4년 1회 연임'이 가능토록 했고,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하는 부분을 삭제했다. 총리에 대해서는 헌법 제86조 2항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조항 중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해 책임총리 구현에 힘을 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사면권 축소, 감사원 독립기관화, 국회 예산 심의 강화,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 삭제 등을 권한 내려놓기로 든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제왕적 대통령은 안 된다'는 국민 요구와 거리가 멀다. 검찰총장, 경찰청장, 감사원장, 국정원장 등 권력기관과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사법부와 행정부 수장에 대한 대통령 인사권은 문 대통령 개헌안에 그대로 있다. 9인의 감사위원을 국회, 대통령, 대법관 회의가 각 3명씩 선출 또는 지명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통령과 대법관 회의 몫 위원이 6명(과반)이라는 점에서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삭제한 것은 '수식어'(修飾語)를 줄인 것일 뿐 권한 내려놓기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이 '국무총리 권한 강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총리와 장관 인사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는데, 총리가 어떻게 자기 소신대로 한단 말인가. 소신대로 하다가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면 바로 잘린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회창 책임총리'는 소신대로 하다가 4개월 만에 사퇴했다.
대통령제에서 '총리'의 존재 자체가 기형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임기와 권한을 보장하는 부통령이 옳다.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국무총리에게 임기 보장과 국무위원 제청 권한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개헌안에 그런 조항은 없다.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장관)을 겸직하는 것 역시 그대로다.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 대표자'가 '대통령의 참모'가 되어 행정부 업무에 매달리는 게 말이나 되나.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래서 '제왕'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 '국회의 국무총리 선출'이 삼권분립에 위배되듯이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장관)을 겸직하는 것 역시 삼권분립 위반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은 인사권, 검찰권 등에서 거의 왕 같은 권한을 가진다. 대통령들이 퇴임 후 수난을 겪는 것은 재임 시절 인사권과 검찰권을 독점한 탓에 견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개헌안은 '제왕적 권력 내려놓기'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일반 법률안과 달리 국회에서 수정할 수 없다. 그대로 수용하거나 부결해야 한다. 개헌안이 가결되려면 현 재적의원(293명)의 3분의 2인 196명이 동의해야 하니 국회 통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여야가 국회 개헌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바람에 여당은 난처하게 됐지만, 도리 없다. 여야는 적어도 대통령 개헌안보다는 권력 분산이 훨씬 크게 이루어지는 개헌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 비극의 반복을 막을 길이 없다. 더불어 국회가 사사건건 행정부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인사권과 검찰권에서 제왕 같은 권력을 누리는 반면 정책에 있어서는 국회가 거의 제왕 같은 힘을 갖고 있다. 대통령은 칼만 휘두르고, 국회는 발목만 잡으면 누가 일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