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무형자산의 전성시대

입력 2018-03-28 00:05:00 수정 2018-05-26 23:54:20

서울대 법대 졸업. 현 중소기업법률지원단 자문변호사
서울대 법대 졸업. 현 중소기업법률지원단 자문변호사

무형자산이 국부의 상당 부분 차지

창작·연구개발하면 無에서 有 창조

개인·기업 더 큰 부가가치 찾아 나서

공정하게 취득하고 소비하게 해야

최근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가 유행하며 투자 광풍이 지나갔다. 국가가 정부은행을 통해 실물 형태로 발행·인쇄하는 화폐를, 공권력과 무관한 IT 전문가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 내고, 또 거래나 소지 같은 화폐 본연의 기능을 갖추도록 했다니 참으로 놀랍다. 먼 옛날 패각이 화폐 기능까지 맡던 때를 생각하면 천지개벽이다.

현대 세상에서는 관념적이고 무형적 자산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 재산이라면 그저 금, 화폐, 부동산 등 손에 잡히는 물건만 해당했지만, 이제 더 비싸고 가치 있는 자산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비트코인이 그렇고, 전산상 결제 시스템으로 거래되는 회사 주식도 마찬가지다. 특허권이나 프로그램 같은 지적재산권은 발명의 명세서 등이 등록되거나 소스코드의 결합물로 저장되기는 하지만 역시나 그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두뇌와 감성으로 개발하거나 창작한 지적 창작물은 국가나 법제도로부터 막강한 보호를 받는 권리의 대상이 되었다.

경제학적으로 재화는 유한하고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 특히 가격이 생겨난다고 본다. 하지만 지적 창작물은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생산 가능 범위가 어찌 보면 무한하다. 무한하게 창조되더라도 계속 기술적 진보를 이뤄 내거나 사람의 감성을 잘 움직일 수만 있다면 파생되는 부가가치 또한 한계가 없다.

삼성전자가 보유하는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대략 200조원에 육박한다. 이 중 무형자산의 가액이 약 2조8천억원인데 그중 산업재산권의 가치는 약 9천500억원, 개발비까지 합하면 1조8천억원 수준이다. 엔씨소프트는 총자산액이 3조4천억원가량 되는데, 그중 무형자산은 214억원을 차지한다. 게임회사임에도 산업재산권 가액은 9억원가량에 지나지 않으나 이는 자회사를 통해 보유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적절한 기술의 개량이나 업데이트를 해 주면 오랜 기간 보유하더라도 물리적인 멸실, 노후화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사유재산권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무한정 보장되어야 할 가치에서 제한적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자유로, 공정성이나 형평성, 사회적 책임 등과 결부되게 된다. 그런데 지적재산권은 아직도 그 행사의 남용이 염려되는 단계가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보장해 주려는 추세에 있다. 음반이나 영화, 프로그램의 무단 복제에 관한 규제나 배상 시스템이 꽤 발달해 있다. 저작권에 관하여는 한미 FTA 협정에 의해 권리보호 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꽤 늘어나기도 했다. 제조업체들은 3D 설계 프로그램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중 대부분 해외기업 소유이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이 실수로 무심코 이들 프로그램 복제품을 사용하다가 시중에서 정상 구매할 때 지급할 가격보다 더 큰 금액의 배상책임을 지는 걸 보면 참 안타깝다.

국내 저작물 중 가장 대중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분야를 찾자면 단연 음반이다. 대형 기획사가 제작한 음반이나 음원과 같은 저작물의 전송이나 유통, 배급 권한을 대기업, 또는 대형 통신사 계열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작곡가나 가수의 활동은 1차 산업, 기획사의 비즈니스는 2차 산업에 해당하고,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은 3차 산업의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나마 법적 보호를 통해 작곡가나 가수의 저작권이나 저작인접권이 저작료 징수체계를 통해 잘 지켜지는 건 다행이다. 하나, 저작물의 생산'유통 단계가 여전히 전방으로 흘러갈수록 각 단계별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커지는 것은 다소 유감이다.

무형자산이 국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가는 건 IT산업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토지와 같은 유한 자원을 더 많이 갖고자 배타적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창작과 연구 개발에 집중하면 가상화폐를 채굴해 내듯 새로운 자산을 무에서도 창조해 낼 수 있다. 자산의 형태가 변함에 따라 개인이나 기업은 더 노력과 자원을 집중할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더 큰 부가가치를 키워낼 수 있는 신대륙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반면, 그렇게 만들어 낸 무형자산 또한 헌법의 경제질서나 가치를 기초로 공정하게 취득할 기회가 주어지고, 누구나 만족스러운 대가로 소비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기를 희망한다.

이정호 법무법인 천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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