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수 있는 것 맘껏…나의 키 높이만큼 책을 쓸 계획"
'괴짜 교수'로 불리는 영남대학교 최재목(58) 교수가 최근까지 5개월여 만에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분야도 전문학술서를 포함해 평론집, 에세이 등 다양하다. 올해 말까지 20여 권을 출판한다는 계획이다. 이쯤 되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쏟아낸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의 저술(공저 포함)은 60여 권이 넘고, 발표한 논문만도 200여 편에 이른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키 높이만큼의 책을 쓴다는 것이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교수라는 직업이 아무리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본업이라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이 같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그를 괴짜 교수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괴짜(부정적 의미) 교수라는 따돌림이 그를 정말 괴짜(긍정적 의미)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마치 책 창고 같은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그동안 꾸준히 출판을 해왔지만 2012년 이후 학교의 보직(독도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책 만들기에 몰두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논문과 각종 원고는 꾸준히 준비했었죠. 그런데 지난해 10월 어느 날 갑자기 정년이 8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전공은 동양철학 중 양명학이지만 여기서 뻗어나온 잔가지가 너무 많아서 작업 스펙트럼이 넓고 복잡합니다. 문예, 비평, 미술, 시, 고대'근세'근대 철학, 일반 학술사로 펼쳐져 있고 칼럼, 투고, 미완성 작품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제가 아니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조차 찾기 힘든 상황입니다. 제가 아니면 제 작업을 정리해줄 사람이 없는데…, 자칫 정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최 교수는 인터뷰하면서 '불안' '고독' '불화'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그 불안감과 고독감의 극대화가 문예적 예술적 섬세함을 키워주고 철학적 상상력을 북돋아주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세상과의 불화를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디딤돌로 삼았다는 것이다. '불안' '고독' '불화'를 넘어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삶을 지향하는 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불안'고독으로 시작한 삶
최 교수는 1961년 상주시 모동면에서 칠 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곱살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잠을 깼습니다. 죽음에 대한 허무함이 몰려들어 저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보다 '이놈, 잠자다 뭐 하는 짓이고!' 하며 오히려 혼을 냈습니다. 죽음의 공포는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음을 이때부터 배운 셈이죠."
백일해를 앓으며 죽을 뻔도 했고, 음식을 잘못 먹고 체해 기절하기도 했으며, 온몸에 난 종기로 큰 고생도 했다. 어릴 적부터 외톨이였고, 그래서 늘 불안하고 고독했다.
고등학교(대륜고 졸) 때 대구로 유학을 나왔다. 촌놈이라고 무시를 당했다. 요즘 말로 '왕따'였다. 문예부에 들어가 인정받으며 자존심을 좀 회복하긴 했지만 그때 쓴 시들은 불안하고 대체로 우울했다. 고등학교 때 직접 '호'를 지었다. 그것이 고마(孤馬) '외로운 말'이었다. 낯선 자들과의 불화 속에서 3년을 보냈고, 혼자서 '떠돌기'와 '글쓰기'가 도피처이자 위안처였다. 교무실에 불려가 선생님으로부터 뺨을 20대나 맞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왜 선생님이 그랬는지 그 영문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다.
"몇 년 전 어머니가 (최 교수를) 임신해서 제가 교수가 될 때까지의 일들을 회상하여 깨알 같은 글씨로 눌러 쓴 노트 10권, 그리고 당신의 일생을 적은 노트 20여 권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제 불안의 근원을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심한 시집살이로 고생했고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한밤중 집 근처 흐르는 시냇물이 장마철이라 시커멓게 휘돌아가는 곳에 서 있다가 그 물결이 너무 무서워 그냥 돌아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배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내가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또 태어나서 젖 먹던 시절 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득이 어머니와 6개월 동안 멀리 떨어져 지내던 탓에 젖을 먹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불안했던 원인이 바로 생존의 불안, 그리고 모성 결핍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끊임없는 세상과 불화
국어선생님의 실존주의 철학 강의가 매력적이었다. 또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그 당시 평등, 인간해방, 개성존중, 여성주의, 생태환경주의, 종교적 관용 사상이 포함된 양명학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었다. 쏙, 빠져들었다. 철학, 그중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일헌 이완재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시기 위해 영남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조교로 활동했다. (당시 유명 동양철학자였던 이완재 교수는, 양명학을 이단으로 비판했던 퇴계 이황의 가문이지만 최 교수의 양명학 공부에 아량과 관용을 베풀어주었다)
그러나 불화는 심화되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경찰대 가라, 육사 가라, 법대 가서 판'검사 해라, 철학 해서 밥 먹고 살겠나?"며 끝까지 철학공부에 반대했다. 전통 유학자 집안으로, 주자학적 사고에 젖은 아버지는 교수가 된 이후에도 아들이 인문학자이고 철학자라는 것이 못마땅했고, 특히 양명학을 한다는 것에 불편해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점에서 만난 타인들' '기다리는 꿈'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대구시내 다방에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난리가 났다. "철학을 하면서 시를 쓴다고? 자가 지 정신이가!" 시를 쓰지 말라는 교수들의 권유가 있었다. 그 후 10년간 시를 쓰지 않았다.
일본 유학생활 역시 만만치 않았다. 1985년만 해도 한국은 못사는 나라였고, 한국 사람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거주지역 관할 사무소에서 지문등록을 요구해 거부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한국으로 돌아가라"였다. 어쩔 수 없이 타협했지만 일본 사회와의 불화는 불가피했다. 대학원의 일본인 선배들과의 관계도 서먹서먹했다. 선배들은 차를 따를 때조차 몸을 숙이지 않고 뻣뻣하다며 핀잔을 주었다.
"지도교수였던 다카하시 스스무 교수의 아량과 관용이 없었다면 저는 공부를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퇴계학과 양명학의 권위자로 친한파였던 다카하시 교수는 '자네는 민족주의자네!'하면서 웃으며 포용해 주셨습니다."
더 큰 불화는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991년 만 29세에 대학교수로 임용되는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그저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취업한 죄 때문에 십여 년은 동문 선배들이 괴롭혔고, 그 이후 십여 년은 이런저런 이유로 주변 동료들이 갈구었습니다. 언제 사표를 내고 직장을 떠나나, 이런 생각으로 살아온 나날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최재목, '내 인생의 레임덕' 중 일부)
최 교수는 이제 왕따든 주변과의 불화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주변이 어찌하든 간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광자(狂者)의 기상을 얻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최 교수는 1987년 결혼해 일본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겨우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시를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도 당시 현실의 고통을 위로하는 수단으로 수십 편의 시를 썼다.
"논리적 논문은 감성을 표현하지 못하고, 감성적 시는 논리적이지 않은 모순 속에서 갈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시 실력이나 테스트 해보자는 생각으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도전했습니다."(1987년 최 교수는 '나는 폐차가 되고 싶다'란 작품으로 첫 신춘문예 도전, 등단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아르바이트 근무처로 가려면 자전거를 1시간 이상 타야 했습니다. 어느 겨울날 얼어붙은 길을 달리다 자전거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치면서 눈물이 핑 돌 만큼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폐차장을 보며 '나도 저처럼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폐차를 보니 낱낱이 해체된 부품들이 왠지 너무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나는 폐차가 되고 싶다'는 작품이 탄생했다.
매일신문 등단으로 다시 자신감을 얻은 최 교수는 '시심(詩心)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이후 계속해서 시를 썼다.
"시를 쓰면 영혼이 맑아지고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상력과 직관력이 생겨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늪' '상상의 불교학-릴케에서 탄허까지' 같은 책은 시적 상상력에 힘입은 바 있습니다. 현대는 감성의 시대인 만큼 대중강연에도 시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 그림에서 위로를 받다
10여 년 전, 최 교수는 또 학내에서 '문제의 괴짜 교수'로 부상했다. 인문코리아(HK) 사업을 두고 갈등이 격화되었다. 최 교수는 그 당시를 "솔직히 나는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 지난여름 아니 거의 일 년 가까이 사람과 조직과 규정 사이에서 지쳤기 때문이다. 이가 다 흔들리고 솟구쳐 결국 어금니 하나가 빠져 버릴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그동안 위로로 삼았던 시 작업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시는 마음의 그늘, 상처, 아픔 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그림은 내면을 컬러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그래서 나를 시보다 더 투사시켜 정리하면서 형상 있는 형태로 표현하고 싶어 위로의 한 형식으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최 교수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그냥 위로이자 놀이터로서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린다. 세미나 혹은 각종 행사 중에도, 책을 읽다가도, 노트와 각종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2009년에는 영남대 중앙도서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 하는 공부나 제대로 하지, 그림은 무슨 그림!" 하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내가 나를 표현한 것, 그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강행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면 전시회를 열 작정이다.
"양명학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내가 본문이지 각주가 아니다. 어떤 주석도 필요 없다. 외부로부터 절대 덧보탤 필요가 없다. 너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라. 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최고다. 자신을 해방하라. 모든 면에서 누구나 능력은 평등하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대중을 벗 삼아 나를 풀어내다
대학 내부 사람들과의 불화는 대중이라는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다. 대학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또 자기 영역에 폐쇄적 경향이 강한 아카데미를 벗어나면 '철학+문학+예술+지성사' 등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제 최 교수는 전국 어디에서도 알아주는 인문학 강사가 되었다.
"누군가는 또 '최○○는 밖으로만 나돈다'고 비난하겠죠. 하지만 이제 저는 그냥 제 갈 길을 갈 생각입니다."
최 교수의 유명세에 더해서 '스무 살의 인문학' '융합인문학' 등 대형 인문교양강좌가 기획'운영되었다. 500명 모집에 2천 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드는 최고의 인기강좌이다.
"선험적 규범이나 원리'원칙'규정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강조하는 양명학은 현재와 같은 변화'개혁의 시대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매뉴얼이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해답은 너한테 있다. 너의 양식과 양심대로 행동하라. 인간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 오성자족(吾性自足: 나의 본성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맘껏 하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최재목 교수는?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쓰쿠바대학 대학원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양명학과 동아시아사상사이다. 방문학자'객원연구원으로 하버드대학, 도쿄대학, 레이던대학, 베이징대학에서 연구했고, 한국양명학회장(2013~2014) 일본사상사학회장(2015~2016)을 역임했다.
◇최근 출간한 책(2017년 10월~2018년 3월)
▷상상의 불교학-릴케에서 탄허까지 ▷양명학의 새로운 지평-숨은 얼굴 드러난 얼굴 ▷방법'은유'기획의 사상사 ▷강호의 지성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 ▷최재목의 횡설수설 '터벅터벅의 형식' ▷최재목의 시'문화 평론집 '상처의 형식과 시학' ▷길 위의 인문학: 희(希)의 상실, 고전과 낭만의 상처 ▷퇴계, 초상의 탄생 ▷퇴계가 소년에게 전하는 말들 ▷한국문화의 현상학: 언덕의 시학 ▷범부 김정설: 동방학의 탄생
◇이어 나올 책들(2018년 5월~2019년)
▷동아시아양명학의 전개(중국판) ▷한국근대양명학의 탄생 ▷양명학 입문 ▷배호, 위로의 인문학 ▷최재목의 장자 소요유…제물론 읽기 ▷생명과 노화 ▷니시 아마네의 백학련환(百學連環)(번역) ▷동아시아 선불교'양명학'서양철학 ▷시집'시화집(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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