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철강 지키려고 자동차 '희생양' 불만…8년 전 협상 때도 양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마무리됐다. 한국은 자동차를 내주고, 철강과 농업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측의 관심 사항이었던 화물자동차 관세 철폐 기간 연장과 안전'환경 기준 완화 등을 들어주고, 철강 관세 부과와 농축산물 추가 개방 요구를 막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철강'농업 업계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역 車부품업계 비상
26일 한미 FTA 개정 협상이 타결되면서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업계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완성차업체의 단가 인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서산업단지(성서산단)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업체 A사 관계자는 FTA 개정 협상 타결 소식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번 협상 타결로 기존 2만5천 대에 한해 인정했던 안전기준 쿼터 물량이 5만 대로 늘고 한국산 화물자동차(픽업트럭)의 관세 철폐도 2021년에서 2041년으로 연장되는 등 자동차 분야의 피해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2차 협력업체인 B사 대표는 지역 업체 대부분이 국내 완성차업체의 협력업체인 상황에서 타격이 더욱 클 것이라고 했다. 완성차업체가 받는 타격은 수천 개에 달하는 지역 협력업체에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 기존 2021년 철폐를 바라보고 생산을 준비했던 픽업트럭 관세 철폐가 20년 더 연장되는 악재를 맞았다. 25%의 관세를 감안하면 사실상 픽업트럭을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B사 대표는 "관세를 감안하면 픽업트럭은 전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다. 물량 수주가 조금이나마 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안타깝다"며 "원청업체에서 적자를 보면 하청업체는 단가 인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협력업체가 대부분인 대구 지역 전체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이 업계에 실질적으로 미칠 영향과는 별개로 자동차 분야가 자꾸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번 협상에서도 농업과 철강 분야를 지키고자 자동차 양보를 카드로 내밀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7년 한미 FTA 최초 타결 이후 2010년에 추가 협상을 하면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 관세 철폐 기간이 연장되고, 미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는 즉시 철폐에서 5년째 완전히 없애는 방향으로 양보한 경험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자동차 업종에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불만이다. 협상 내용을 보면 자동차는 '호구'나 다름없다"며 "지역 고용에서 큰 역할을 하는 자동차 업종에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농민들만큼이나 공장 노동자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나라 경제를 이끌어왔는데 이제 와서 버림받는 기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만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 부활 가능성이 거론됐던 한국산 자동차의 관세 철폐를 유지하기로 한 데다, 미국산 자동차부품의 50% 의무 사용도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아 당장 '치명상'은 피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자동차의 안전기준이 완화되는 등 악재도 있지만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점유율이 낮은 상황에서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
성서산단의 금속가공업체 C사 대표는 "업계에서 가장 걱정한 부분이 미국산 자동차부품의 의무사용이다. 지역 협력업체들의 수주물량이 당장 절반으로 줄게 돼 해당 안이 관철되면 사업을 접으려 했다"며 "업체 대표들 사이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일단 안심…'관세 폭탄' 피한 건 다행이지만…
우리나라가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 포스코 등 철강업계에서는 "관세 폭탄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쿼터 조건을 완화하는 노력과 더불어 관련 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 관세 부과 조치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대신 지난 2015~2017년 평균 수출량의 70%에 해당하는 쿼터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 지난 한 해 대미수출량(362만t)의 74% 수준인 268만t의 철강 제품을 추가 관세를 물지 않고 수출하게 됐다. 하지만 74%보다 낮은 수준의 쿼터를 부과받은 강관업계(2017년 대비 51%)는 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측은 "전방위적 노력 덕분에 당초 수입 물량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서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판재가 주력인 이들 업체들은 이미 대미 수출량을 줄여 영향이 크지 않다. 판재는 2017년 대비 111%의 쿼터를 확보했다.
포스코는 2016년 연결기준 조강생산량 4천220만t 가운데 내수와 수출 비중은 5대 5 수준이다. 이 가운데 수출 지역은 동남아가 가장 많고 중국, 일본, 미주지역 등이 뒤를 잇고 있으며 미주의 경우 100만t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제철도 대미 수출 비중이 4% 수준 정도다.
이에 반해 강관 업체는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 유정용 강관의 쿼터 104만t은 지난해 수출량(203만t)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강관을 수출하는 세아제강'넥스틸'휴스틸 등에서는 "최초 권고안이었던 25%라는 고관세를 받는 것보다는 낫지만 더 많은 쿼터를 확보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국내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 주력 제품인 유정용 강관 등 강관류 쿼터에 대한 지속적인 협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아제강 한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강관류는 수출에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국 다변화, 고급 제품 확보 등을 통해 대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경북 농업 한숨 돌려…농민들 "더 이상 내줄 게 없어"
경상북도는 한미 FTA 재협상 결과 농업 분야 추가 개방은 없다는 26일 정부 발표에 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애초 정부가 이번 재협상에서 농업 분야는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경북도는 혹시 모를 결과에 대비해 협상 내용을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꾸준히 파악했다. 이날 협상 결과가 알려지자 잔뜩 긴장했던 경북도는 여유를 찾았다.
특히 경북도는 협상이 신속히 타결된 점에 큰 점수를 줬다. 협상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농축수산물 수출입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한미 FTA 재협상이 장기화하면 지역 농민, 수출 농기업 등에서 마음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제거돼 수출 확대를 통한 농업 경쟁력 강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농업 시장 추가 개방이 없는 것이 "이미 너무 많이 내줘 더 내줄 게 없는 탓"이라는 평도 나왔다. 경북농업은 한미 FTA 발효 후 큰 손해를 봤다. 실제 지난 2012년 한미 FTA 정식 발효 당시 대구경북연구원이 경북농업 피해를 분석, 발효 15년이 지난 후(2027년) 생산 감소액을 추정한 결과 4천415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었다. 축산 분야 1천937억원, 과수 분야 1천401억원, 채소'인삼 등 1천25억원 등이었다. 이는 전국 생산 감소액 1조2천758억원의 35%에 달하는 피해율이었다.
이에 한미 FTA가 경북농업 체질 개선과 도약의 계기가 됐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경북도는 2007년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60명 규모의 전문가 집단인 '경북농어업FTA대책특별위원회'를 꾸려 정책 개발, 현장 목소리 청취, 대정부 건의 창구를 마련했고, 경북농민사관학교를 통한 농업 CEO 인재 양성, 각종 6차 산업 정책 추진 등으로 낡은 농업 체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경북도 관계자는 "지난해 경북도 농축수산물 수출 실적을 보면, 미국 시장이 5만7천여달러로 일본(7만2천여달러) 다음 2위였다. 한미 FTA 재협상으로 불확실성이 사라진 만큼 미국 수출시장 개척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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