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사피엔스와 언어

입력 2018-03-26 00:05:04 수정 2018-10-12 09:34:31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10만 년 전 지구 상에 존재한 최소 여섯 종류의 인간 종 가운데 지금까지 남은 유일한 인간 종인 호모 사피엔스를 다룬 책이다. 그는 책에서 질문을 던진다. '호모 솔로엔시스의 마지막 흔적은 약 5만 년 전 일이다. 호모 데니소바도 그 직후 사라졌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 년 전에 멸종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라리는 이 의문점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거꾸로 되짚어간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사피엔스가 최후의 인간종으로 살아남은 비결을 탐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인지혁명'의 결과라는 것이다. 즉 호모 사피엔스의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능력이 역사를 바꿨다고 말한다. 돌연변이로 인해 사피엔스에게 특별한 '언어' 능력이 생기고, 언어가 진화해 결국 세상을 정복하는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추론이다.

사피엔스 군집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정보 공유와 사회적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언어는 유연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내는 힘인 동시에 조직력의 원천이다.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행동을 일치시키면서 전략적 사고가 가능해진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종보다 우위에 서는 것은 자연스럽다.

현대에도 언어가 어떤 식으로 인간 사회에 작용하고 영향을 주는지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언어가 개입하지 않는 인간 역사, 인간 사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피엔스 시대를 연 열쇠가 언어이듯 지금도 언어가 인간 사회를 좌우하는 힘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언어는 오랜 인간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한 단서임에도 인간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최근 김기현 울산시장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경찰 수사를 놓고 자유한국당이 벌이는 말싸움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만 가진 언어의 힘과 의미가 무색할 정도다. '광견병까지 걸린 정권의 사냥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 등 온갖 험담이 난무한다. 참다못한 전국의 경찰이 SNS에 "미친개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관입니다"라는 인증샷을 올리며 집단 반발한다.

왜 자유한국당이 실권하고 국민의 눈 밖에 났는지 그들이 쓰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비단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우리 정당사에서 부적절한 말이 선거를 뒤바꾸고 정권의 운명을 움직인 사례도 많다. 이미 품위를 잃어버린 언어는 사회적 관계의 파탄이자 스스로 제 눈을 찌르는 흉기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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