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최후에 아름다운 할머니

입력 2018-03-26 00:05:04 수정 2018-10-16 17:36:38

내 나이 서른을 넘어서자 젊음에 대한 아쉬운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강을 바라보며 강의 길이와 내 나이를 견주어 보고는 다와 버린 인생은 아닐까 하며 늦은 후회를 했던 날이 있었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것과 싫은 것, 있어야 할 것과 없어야 할 것에 얼마나 많이 참다움을 알면서 살았는지도 반성하였다.

흐르는 강을 역류시키고 싶을 만큼,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 용광로처럼 자신을 불태우고 싶었다. 영원까지 달릴 수 있는 고독한 마라토너가 아름다웠기에 나도 그렇게 살며 달리고팠던 것이다. 동녘을 용솟음치는 정열적인 아침 해보다, 서녘을 물들이며 분신처럼 자신의 전부를 불태우고 사라지는 석양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나도 그렇게 서녘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져 가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소망했었다. 그 열망은 아직도 미루어 본 적 없이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내 삶이 그윽하게 밸 그날을 위해, 내가 살아오며 잘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삶을 배워 나아가겠다고 결심했던 일, 그래서 자주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였고, 내 마지막 인생의 빛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도록 내 인생의 작은 배를 힘껏 노 저어 왔던 것이다. 내 삶의 힘든 고개를 얼마나 많이 더 넘고 넘어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어느 강기슭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의 절정을 위해 빛나는 보석도, 화려한 옷차림도, 나에게는 아름다움의 표적이 될 수 없었고. 진정으로 나 자신이 아름다울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해 많은 것들을 더 준비하여 마련하고 싶은 욕심으로 모든 것을 미루고만 싶었던 때도 있었다.

사람과 꽃을 사랑하였지만 사람에게 마음 다친 적도 있었고, 시든 꽃을 만지며 작별을 경험했던 시간들 속에서 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무심히 버려지는 꽃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하기에 더 아름다운 꽃으로 피었다가 시들어 가야만 하는 것이라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했었다. 마지막 노을이 되어 사라져 가도 그 너머에서 나를 맞이해 주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참으로 마음 든든할 뿐이다. 그분의 뜻대로 다 살지 못했어도 사느라고 애썼다며 반갑게 맞이해 주실 그분에게 안길 수 있다는 믿음은 내게 큰 행복인 것이다. 세상을 살며 다 체득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고백해 보리라. 그때 내가 못 견뎌 울었던 일들을 다 털어놓으리라. 아마도 그분께서는 서툰 내 삶을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더 많이 애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먼 훗날, 최후에 아름다운 할머니의 모습으로 서녘을 물들이는 노을이 되고 싶다. 그 강 끝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이 끝나는 날, 미약하나마 한순간이라도, 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홀연히 사라지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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