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넘는 비자금 조성 의혹…2015, 2017 채용비리 확인, 시민단체 등 사퇴 압박 결정타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이 23일 겸직 중인 대구은행장직 사임 의사를 밝힌 가운데 비자금 조성 및 직원 채용 비리 등으로 6개월 넘게 내홍을 겪는 그룹 앞날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 회장의 '결단'으로 사태가 숙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지주회장직 유지는 그룹을 더한 혼란에 빠트리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난 목소리도 거세다.
◆박인규 DGB 회장, 은행장 사임 배경은?
23일 오전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은행 제2본점 4층. DGB금융지주 제7기 정기주주총회장은 주주와 임직원, 취재진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주요 안건은 재무제표 승인과 이사 선임 승인 건이었지만, 성희롱 파문'비자금 조성 및 횡령 의혹'채용 비리 의혹 등 일련의 악재가 불거진 후 1년 만에 열리는 주총이어서 관심이 더욱 컸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주총장 안팎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구은행 노조원들은 주총장 앞 로비에서 "지역민과 직원 신뢰를 잃은 박 행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주총장 안에선 소액주주 권한 위임을 받아 참석한 '박인규 행장 구속 및 부패청산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박 행장이 회장직도 내려놔야 한다. '거수기' 역할을 한 이사의 연임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총장 의장석에 선 박 회장은 안건 상정에 앞서 미리 준비한 듯 "최근 여러 사안으로 심려를 끼쳐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사과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은행장직에서 물러나겠다. 회장직 거취는 상반기 중 정하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이날 은행장직 전격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자신과 DGB금융그룹을 둘러싸고 잇따르는 악재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DGB금융그룹은 지난 6개월간 바람 잘 날 없다시피 했다. 지난해 7월 은행 내부서 비정규직 여직원 등에 대한 성추행 문제가 불거지면서 박 회장이 직접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어서 제기된 박 회장 비자금 의혹 수사는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박 회장은 은행장 취임 직후인 2014년 4월부터 지난 8월까지 함께 입건된 간부들과 법인카드로 32억7천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구매한 뒤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 30억여원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회장은 비자금 조성, 횡령 의혹으로 강도 높은 경찰 수사를 받아야 했다.
지난 연말에는 박 회장 자신을 제외한 등기임원 3인을 동시에 내보내는 등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면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논란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 2월에 채용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그룹 이미지는 또 한 번 실추됐다.
대구은행은 2016년 채용 과정에서 은행 임직원 자녀 3명의 인성 점수가 합격 점수를 밑돌았지만 간이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줘 인성전형을 통과시켜 지원자들을 모두 합격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검찰은 채용 비리 의혹 사례를 추가로 포착하면서 박 회장과 대구은행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당초 2016년 3건의 채용 비리 의혹 이외에 2015년과 지난해에 30여 건에 이르는 채용 비리 의혹 사례가 있는 것으로 대구지검은 보고 있다. 21일에는 대구은행 전 인사부장과 현 인사담당 직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최근 박 회장뿐 아니라 은행 전·현직 임원으로 수사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DGB 앞날은?…더 큰 혼란 우려도
박 회장이 이날 은행장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후임 은행장은 내부 절차에 따라 늦어도 오는 5월 중에는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지주 회장직은 상반기 중 거취를 정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최소 3개월 이상은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 한 간부직원은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것 아니냐. 여러 사태가 숙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은행 노조와 시민단체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노조는 박 회장의 지주회장직 유지는 조직의 앞날을 생각지 않는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박 회장이) 결국 자신의 편을 들어줄 사람을 후임 행장으로 세울 것 아니냐. 그럴 경우 지역사회에서 바라는 신뢰 회복은 거두기 어렵고, 새 지주회장이 와서 행장 인사를 2, 3개월 만에 다시 해야 하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면서 "회장직 유지는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분간 은행은 수석부행장 등 대행체제로 운영하면서 경영 능력과 개혁 의지를 갖춘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해야 한다"면서 "직원들의 의사를 물어 이런 뜻을 임원추천위 등에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대책위 한 관계자도 "박 회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면 행장직과 회장직을 즉각 내려놓아야 한다. 회장직 유지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대구은행 한 관계자는 "지난해 대구은행이 창립 50주년을 맞고 어느 해보다 좋은 실적을 거두었지만 조직 전반이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하루빨리 악재들이 해소돼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바랄 뿐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