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 산책] 참 오래된 담장 가에

입력 2018-03-24 00:05:00

권력이 다하자,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겸재 정선이 그린
겸재 정선이 그린 '대은암'.

참 오래된 담장 가에 崔慶昌(최경창)

문 앞의 수레와 말 안개처럼 사라지니 門前車馬散如烟(문전거마산여연)

잘 나가던 그 권력도 그리 오래 가지 않네 相國繁華未百年(상국번화미백년)

깊은 마을 적요 속에 한식날 지나는데 深巷寥寥過寒食(심항료료과한식)

수유 꽃만 노랗구나, 참 오래된 담장 가에 茱萸花發古墻邊(수유화발고장변)

이 시의 원래 제목은 '대은암'(大隱巖)인데, 대은암은 청와대 뒤쪽 인왕산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대한 바위 이름이다. 바로 그 바위 앞에 지족당(知足堂) 남곤(南袞'1471~1527)의 집이 있었다. 위의 한시는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이 그의 옛집을 지나가다가, 권력 무상에 대한 가슴 뭉클한 소회의 일단을 시적 구도 속에 포착한 작품이다. 그런데 가만, 남곤이라니? 도대체 남곤이 누구였더라?

남곤은 원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서 사림파(士林派)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박은(朴誾), 이행(李荇) 등 빼어난 시인들과 어울리면서 문명을 크게 떨쳤던 당대 최고의 풍류 시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교적 도덕정치의 깃발을 내걸고 급진적인 개혁을 주도하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사사건건 의견이 충돌되면서, 그의 운명이 엉뚱한 곳으로 튀기 시작했다. 조광조가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남곤을 소인배로 몰아붙이자, 도분이 난 남곤은 심정(沈貞), 홍경주(洪景舟) 등 몹쓸 인간들과 손을 잡고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 등을 일망타진했다. 일이 뜻밖에도 크게 벌어지자, 그는 적지 않게 후회가 되었던 모양이다. 귀양 간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리려고 하자 '죽일 것까지는 없다'고 건의를 했다. 건의가 묵살되어 조광조가 죽자, '소인이 군자를 죽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묘사화 등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높은 벼슬이 주어져서 마침내 영의정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원래 자신과 같은 편이던 사림파들을 몰살하는 일에 가담했으므로 조선조 내내 '저 죽일 놈'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좌우간 한때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누리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던 남곤! 그가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대은암에 있는 그의 집 앞은 찾아오는 수레로 완전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지만 권력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자, 더 이상은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늘은 한식날,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아주 뜻 깊은 날인데도 마을 전체가 적막하기 짝이 없다. 퇴락한 담장 가에 산수유 꽃만 저 혼자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남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죽은 사람이었다. 그는 임종을 맞이하여 '평생 동안 마음과 행동이 어긋났다'면서 비석을 세우지 못하게 했다. 평생 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모조리 다 불사르게 하고, 자제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헛된 명성으로 세상 사람들을 속여 왔다. 너희들은 내가 쓴 글들이 세상에 전해져서, 나의 죄를 더 무겁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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