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슬레이·63빌딩 유리 청소·무인도·인도 빨래터 체험…웃음과 감동 전해
놀라운 화제성과 함께 무려 13년간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 MBC '무한도전'이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다. MBC 측에서는 '휴식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연출자 김태호 PD, 그리고 유재석과 박명수를 비롯한 현 출연자들의 하차까지 확정된 만큼 사실상 '종영'이라 표현하는 게 맞는 말이다. 오는 30일 방송분을 끝으로 현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함께하는 '무한도전'은 막을 내린다. 시즌2 제작 등 '무한도전'의 향후 행보에 대한 소문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MBC 측은 아직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 '무한도전'은 고정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에 힘입어 긴 시간 정상의 자리를 지킨 프로그램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전작의 유전자를 상당 부분 가져다 시즌2를 제작한다고 한들 결국은 '오리지널'이란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방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방송계에 리얼 버라이어티 붐을 일으키고 트렌드를 바꿔버린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과 소재에 대한 인식을 바꿔버린 프로그램, 웃음뿐 아니라 감동까지 자아내며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한 프로그램. 폭넓은 연령대에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영향력을 과시하던 '무한도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박수 칠 때 떠난다
대개 인기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청률과 화제성이 상승한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 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는 정반대다. 정점을 넘어 마지막 남은 아이디어까지 짜내며 고군분투하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시들해질 때가 되면 슬슬 종영 카드를 꺼내 든다.
물론, 지금은 비지상파를 중심으로 예능 프로그램에도 시즌제가 도입돼 '박수 칠 때 떠나는 케이스'가 종종 나오곤 한다. tvN '윤식당'이나 JTBC '효리네 민박' 등 처음부터 대략적인 방송 회차를 정해놓고 시작해 아쉬움을 남기며 시즌을 마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예능 프로그램 한 편이 출발선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레이스를 펼치도록 종용하는 게 다반사였으며, 대부분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 같은 길을 걸었다. '무한도전'도 예외가 아니다.
2005년 '무모한 도전'이라는 타이틀로 방송을 시작해 폐지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13년간 열혈팬 층을 결집시키며 승승장구했던 프로그램이다. MBC 파업 기간과 지난해 잠시 가졌던 휴식기를 제외하고 '무한도전'은 이 긴 시간 동안 매주 아이템을 내놓고 녹화를 진행하며 시청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프로레슬링과 댄스 스포츠, 봅슬레이 등 쉽게 소화하기 힘든 분야에 도전하며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왔고, 그 사이에 '무한상사' 등 상황극과 추격전 등의 아이템을 꺼내 '무한도전'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켰다. 63빌딩 벽면에 매달려 유리 청소를 하고 인도의 대규모 빨래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아프리카로 넘어가 동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러시아에서 우주 비행사 훈련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반면에 그저 후미진 방이나 텅 빈 스튜디오, 또는 무인도에 출연자들을 던져놓고 즉흥적으로 방송 분량 확보를 노리기도 했다. 1990년대 인기가수들을 '토토가'라는 타이틀의 프로젝트하에 속속 소환해 화제가 됐으며, 2년마다 '무한도전 가요제'를 개최해 매번 음원사이트 정상권을 휩쓸곤 했다. 축구선수 앙리와 할리우드 배우 잭 블랙 등 해외 스타들까지 게스트로 초대하며 놀라운 섭외력을 보여줬다.
간단히 떠오르는 것들만 열거하려해도 지면이 모자란다. 소위 강산이 바뀔 수도 있다는 그 시간 동안 '무한도전'이 소화했던 아이템들이다. 시즌제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집중과 휴식을 병행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지금까지, '무한도전'은 사실상 쉼 없이 아이템을 만들어내고 소화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코스를 뛰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다 몸에 무리가 왔다싶을 즈음, 예능 트렌드가 바뀌어 관찰예능이 대세가 되고 그래서 '무한도전'만의 경쟁력 있는 아이템 발굴이 쉽지 않게 된 현재에 이르러 '무한도전'은 레이스 중단 선언을 했다. 비록 전성기 시절의 인기는 아니지만 최근에도 1990년대 톱 아이돌그룹 H.O.T의 재결합을 이끌어내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프로그램이라 종영 소식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내려진 결정일 테니 이젠 존중해줄 수밖에. 1, 2년 여 기간 동안 힘들게 '유지 및 보수'에 열을 올리며 방송을 이어오다 종영 수순을 밟는 대다수의 프로그램과 달리, '무한도전'은 놀라운 체력으로 지금껏 달려 코스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고정관념에 대한 무한도전!
초기 '무한도전'은 출연자들에게 황당한 도전과제를 던지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무모한 도전'이란 초창기 타이틀을 그대로 반영한 포맷으로 출연자들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바가지로 목욕탕 물 퍼내기 등의 과제를 수행했다. 쫄쫄이 유니폼을 입고 '굳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도전 과제를 만나 고군분투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웃음 포인트였다. 소위 'B급 병맛 코드'가 돋보였지만, 그 시절 스튜디오형 버라이어티쇼와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이라고 해도 명확한 미션 수행 과정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은 '무모한 도전'을 생소한 예능으로 받아들였다. 예상보다 저조한 반응 속에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으로 또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등으로 타이틀을 바꿔가며 다양한 시도를 하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이 과정에서 김태호 PD가 투입돼 실험을 이어갔으며, 유재석-정형돈-노홍철-박명수 등 원년 멤버 진영에 하하와 정준하가 들어가 전성기 '무한도전'의 진용이 짜였다. 포맷 실험은 야외와 스튜디오 녹화를 병행하며 이뤄졌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짜장면을 먹는 등 '희한한' 아이템이 동원되는 와중에 스튜디오에서 퀴즈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그 가운데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퀴즈게임 아이템이 일단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 데 주된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김태호 PD는 '특집'을 내세워 고정 포맷 외 또 다른 형식을 변주하며 자유로운 아이템 활용 시스템을 적용해 '무규칙 이종 예능'이란 표현이 적합한 현재의 '무한도전'을 완성시켰다.
끊임없이 아이템을 발굴하고 출연자들과 줄다리기를 하며 재미를 끌어낸 제작진의 공이 큰 만큼, 변칙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을 활용해 방송 분량을 만들어낸 출연자들의 역할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로 유재석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했지만 그 외 고정 출연자들도 제각각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회차별로 주된 역할을 해냈다. '무한도전'이 본격적인 무규칙 리얼 버라이어티의 체계를 갖춘 초창기, 적응을 못해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개그맨'이란 오명을 달고 살던 정형돈은 이후 이 프로그램의 인기 견인차 역할을 하는 멤버로 활약했다. 박명수는 호시탐탐 유재석의 자리를 노리며 심술 맞은 캐릭터를 만들어 예능계의 독보적인 이미지를 확보했다. 추격전 아이템이 떨어질 때마다 사기꾼 캐릭터로 접근해 재미를 줬던 노홍철, 깨알 같은 리액션으로 활력을 주던 하하, 꽤 괜찮은 연기력으로 영화나 드라마 소화 아이템에서 빛을 발하던 정준하 등 '무한도전' 멤버들은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연예인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뒤늦게 합류한 양세형이나 가장 최근 고정멤버가 된 조세호가 '무한도전'에 제대로 발자국을 남기기도 전에 프로그램이 끝난다는 사실이 아쉬운 점 중 하나다.
MBC 장기 파업 당시 노조원들은 '무한도전'을 앞세워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려 했다. 압도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무한도전'을 거론하며 '이 프로그램을 다시 보려면 노조의 파업이 성공을 거둬 MBC 정상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식이었다. 노조원들이 파업의 취지를 알리는 방식 중 하나였는데 프로그램의 팬들은 물론이고 상당수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내는 꽤나 유용한 수단으로 쓰였다. '무한도전'의 영향력과 인지도를 입증하는 사례다. 그만큼 전례가 없을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 화제의 프로그램을 이젠 보내줘야 한다. 아듀~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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