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이 최초로 명명한 미학적 용어, 부조리를 발표하면서 현대연극은 새로운 길로 진입했다. 이는 인간의 권리가 수직적 체제를 고수해오던 시간을 정지시키는 인류사의 획일점을 낳는 순간이었다. 사람의 가치를 계급과 지위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 자체로서의 존엄을 인정해야 보다 가치 있는 삶이 완성된다는 사상이 세계 곳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경제공황도 함께 맞물려 제힘을 발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예술보다 생존이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삶의 실리는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했고, 자연스레 자본의 개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낳은 두 갈림길이 바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다. 불평등주의가 만연한 과거로부터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저항운동으로서 선택한 세계. 이러한 이유로 동시대는 두 개의 국가가 공존하는 현재를 맞게 되었다.
예술 또한 자기-존재를 발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태동했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서사 중심의 내용과 형식은 사라지고 현실에의 능동적 참여를 주장하는 흐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환상보다는 현재를,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는 시대적 고찰을 안은 채 당시의 예술은 약 천 년을 입어왔던 옷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이때 태동한 극작가 헨리 입센, 사무엘 베케트, 외젠 이오네스코로 이어져 비로소 예술의 이데올로기를 맞게 되었다. 여성은 아내이기 전에 여자임을 선언했고(인형의 집),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막이 내렸으며(고도를 기다리며),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코미디하는 배우(대머리 여가수)를 보며 관객은 극장을 나갔다. 그들은 어떤 관념적 언어로 주장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고, 단지 제시에 그치는 연극이 되어 관객의 의식을 관통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연극적이며 또한 반연극적(Anti-)이다. 행동과 반응이 명확해 보이면서도 그저 그런 행위가 난무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뉴스와 신문은 늘 상식을 벗어난 사건으로 가득차 있고, 부유층이 있는 지역에서 불과 몇㎞만 떨어져도 빈민촌이 밀집한 곳을 쉽게 찾는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산재해 있는 부조리의 조각은 예술가에게는 소재이며 의식이고 주제이자 사상이 된다.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 세상을 보게 만든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거울은 와장창 깨진 채로 인간을 비추거나 거울 밖을 뛰쳐나와 시대를 맞았다. 무엇이 정답인지를 강요하던 지난날은 오래된 종이에 불과하다.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익숙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낯설게 보는 눈,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나는 산물이다. 이렇게 해서 부조리는 이념이 아닌 또 하나의 현실주의로서 이곳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