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북 공동 응원단

입력 2018-03-22 00:05:00 수정 2018-05-26 22:17:49

평창동계올림픽도, 평창동계패럴림픽도 모두 끝났다. 이번 대회는 시작 전부터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 참가가 핫이슈였다. 전격적인 올림픽 참가 발표에 이은 선수단, 응원단, 공연단 등의 방남은 올림픽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최고의 효자 노릇을 했다. 실제 북한 선수 참가에 따른 효과는 컸다. 올림픽 개회식 때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동시 입장은 물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피겨 페어의 렴대옥'김주식 등은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기대만큼 꽃을 피우지 못한 방문단도 있다. 응원단이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때의 활약과 인기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관심과 주목을 끌긴 했지만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새롭지도 않았고, 주목을 끌 만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당시 2000년대 초반 잇따라 방남한 북한 응원단의 인기와 국민의 관심은 엄청났다. 필자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북한 응원단 전담 마크맨으로 북한 응원단을 밀착 취재한 덕에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엔 북한 응원단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였다. 그해 8월 20일 응원단이 김해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치열한 취재 경쟁이 시작됐다. 대구로 올라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들렀을 때 통제망을 뚫고 고속버스에 접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수첩에 질문을 적어 보여주면 입 모양으로 '반갑습니다' 등의 몇 마디 듣는 것조차 특종으로 여겨졌을 정도였다.

경기장에서도 경기보다 응원단이 더 인기였다. 경찰 인력으로 둘러싸인 응원단 주변엔 늘 관중과 취재진이 진을 쳤다. 관중석에 있던 여중생이 안전통제요원 몰래 던진 메모를 북한 응원단이 주워 읽는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기사화한 것조차도 관심을 끌었다. 숙소와 경기장을 오갈 때 버스 속에서 북한 응원단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한 보도 등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북한 응원단에 대한 기사에 관심을 가지기는 북한 응원단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응원단은 숙소로 사용하던 대구은행 연수원에 신문을 수십 부 더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 취재진도 덩달아 인기였다. 한국 기자들이 북한 기자들에게 다가가거나 말을 걸면 통제요원이 즉각 다가와 막아서는 반면 북한 기자들의 한국 기자 접촉은 자유롭다 보니 북한 기자와 몇 마디 나눠 기사화하는 것도 특종 중 하나였다. 그 와중에 북한의 중앙TV 등 언론사 몇 곳에서 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경기장에서 북한 기자가 필자를 인터뷰하고 이를 남한 기자들이 빽빽이 둘러싸 취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 기자의 취재에 응하는 대신 북한 기자를 상대로 취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조건이 받아들여져 한국 언론사 중 처음으로 북한 기자를 공식적으로 단독 인터뷰해 보도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평창올림픽에선 응원단도 기자단도 그전과 같은 신비감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움이나 변화도 없었고, 북한 응원단이라는 이름과 존재만으로 큰 관심을 받고 주목을 끌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또 스포츠 빅 이벤트가 열린다면 북한 응원단이 다시 올까 하는 생각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존재감 부재로 아예 북한에서 응원단 파견이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비핵화'를 놓고 한국-북한, 미국-북한 정상들 간의 회담이 추진되는 등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회식 남북 공동 입장,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이은 남북 공동 응원단 구성이다. 2030년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한 대구경북의 경기장 곳곳에서, 고립된 관중석 한쪽에서 응원하고 있는 북한 응원단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남북 공동 응원단이 손발과 목소리를 맞춰가며 함께 신나게 응원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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