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철이 만난 사람] 이재근 국가대표 진천선수촌 촌장

입력 2018-03-21 00:05:00

"국제적 갈등 풀어주는 올림픽, 한반도 정세 변화 큰 기여"

이재근 국가대표 진천선수촌 촌장.
이재근 국가대표 진천선수촌 촌장.
최경철 서울정경부장과 인터뷰 하고 있는 이재근 선수촌장.
최경철 서울정경부장과 인터뷰 하고 있는 이재근 선수촌장.

대박이었다. 지난달 열렸던 평창동계올림픽을 두고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의 올림픽 개최라는 상징성에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 등 모두 17개의 메달을 획득,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의 메달을 수확했다.

그뿐만 아니다. 핵과 미사일로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던 북한이 선수단은 물론, 최고위급 대표단까지 보내면서 이번 올림픽은 한반도 정세 변화의 일대 전환점이 됐다. 스포츠가 국제정치의 변동까지 일궈낸 것이다.

대성공이라고 평가받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 메달을 딴 선수들이었다면 그 뒤편에서 그들의 영광을 조력해 준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칭찬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국가대표 진천선수촌 이재근(68) 촌장. 경기인 출신이 아닌 그는 이례적으로 촌장을 맡아 올림픽 선수단의 총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을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올려놓는 동시에, 이를 통해 세계 속에 코리아라는 이름을 크게 각인시켰다.

-경북도청에서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상주 부시장 등 역임)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경기인 출신이 맡는 국가대표 선수촌장(차관급)을 하고 있나?

▶경북도청에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경북체육회 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겨 8년 동안 일했다. 사무처장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두고 있었는데 이기홍 대한체육회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국가대표 선수촌장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역대 선수촌장은 경기인 출신들이 다 했다. 의외였다. 설명을 들어보니 왜 내가 맡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울 태릉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촌을 진천으로 이전하는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진천으로 이전하는 작업도 어려운 것이지만 진천으로 가면 시설 규모가 3배로 커진다. 이에 대한 관리도 걱정으로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게 갑작스레 선수촌장이라는 직함이 떨어졌다.

-다른 공무원 출신도 많을 텐데 왜 지방에 있던 이 촌장이 발탁됐나?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체육회와 생활체육회 통합 작업을 시도했다. 내가 경북체육회 사무처장이었는데 전국 통합위원회로 들어갔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부안대로 통합이 됐다. 이 과정에서 내 추진력을 대한체육회장이 좋게 평가한 것 같다. 이에 앞서 내가 있었던 경북체육회의 변신도 눈여겨본 것 같다. 변변한 교육 프로그램 하나 없어 평가를 받을 때마다 꼴찌였던 경북체육회를 내가 가서 완전히 바꿨다. 경북체육회를 경북도 산하 26개 산하 기관 중 최우수 기관으로 변신시켰다. 이 점을 대한체육회가 여러 해 동안 목격한 것 같다.

-촌장 임명 과정에서 경기인 출신들의 반발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엄청나게 반발했다. 지난해 1월 임명장 받으러 간 날까지 반발이 있었다. 그들을 설득했다. "나도 체육인이다"라고 했다. 경북체육회 있을 때 12개 실업팀이 있었다. 체육인들의 얘기를 누구보다도 많이 들었고 현장을 뛰면서 많이 익혔다고 말해줬다. 불만이 있었겠지만 그들도 결국 수긍했다.

-이제 평창동계올림픽 얘기를 해보자. 준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선수촌장을 맡으니 잠이 안 왔다. 태릉에 있는 선수촌을 진천으로 옮기는 작업에다 코앞으로 다가온 동계올림픽에서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야 했다. 이번에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이 나오고 봅슬레이에서 은메달이 나오는 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좋은 성적이 나온 것은 선수들이 열심히 한 덕분도 있지만 국가대표들을 지원하는 치밀한 전략이 있었다. 경기력 향상 태스크포스를 조기에 꾸린 뒤 250억원을 들여 해외 전지훈련 등 전폭적 지원을 했다.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선수는 진천선수촌 덕을 많이 봤다는데?

▶체력 훈련을 여기서 했다. 스켈레톤이나 봅슬레이는 체력 훈련이 굉장히 중요하다. 윤 선수는 이곳에서 몸을 만들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번 시작하면 쉬지 않고 2시간을 했다.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식단도 잘 짜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세밀하게 신경을 썼다. 윤 선수는 하루에 5끼 정도를 먹는데 선수촌에서 3끼를 먹고 2끼는 외부에서 가져와 식사를 했다. 선수촌에서 식사를 줄 때도 찜닭'갈비'전복 등 고열량식 위주로 줬다. 너무 많이 먹어서도 안 된다. 하루 5천㎉가 넘지 않도록 조절을 했다.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등의 훈련 과정을 직접 지켜보면서 스켈레톤 윤 선수는 금메달을 확신했고 봅슬레이는 금메달 또는 은메달을 딸 것이라고 장담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이번 동계올림픽 기간 중 진천선수촌으로 들어왔는데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임원들까지 포함해 북한 선수단 15명이 왔었다. 12명은 선수들이고 감독 1명과 임원 2명이었다. 태릉에 있을 때는 없던 시설인데 진천선수촌에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놨다. 펜싱과 투기 종목 등 상대가 필요한 종목의 국가대표들을 위해 상대가 되어줄 선수들이 묵는 시설이 게스트하우스다. 북한 선수단은 이번에 이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다. 북한 선수단이 처음 왔을 때 표정을 보니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꽃다발을 많이 준비했다. 꽃으로 마음을 사려고 했는데 적중했다. 꽃을 안겨주니 얼굴이 풀렸다.

-꽃다발을 안고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는데 북한 선수단이 이내 적응을 했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때문에 사실 국내에서 말이 많았고 팀을 이끄는 머레이 감독도 처음엔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 걱정을 했다. 그런데 막상 북한팀이 오고 나니 머레이 감독이 정말 현명했다. 남북 선수들 훈련을 똑같이 시켰고 북한 선수들의 적응도 굉장히 빨랐다. 열흘 정도 선수촌에 묵었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진천선수촌 식당은 600명이 동시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는데 북한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과 섞여서 밥을 먹었다. 북한 선수들이 밥을 먹으면서 우리 선수들과 얘기도 스스럼없이 나눴다. 나이를 서로 물으면서 "북한은 만으로 나이를 세니 내가 언니"라고 말하는 등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 역시 젊은 층은 빨리 친해지는 것 같았다. '같은 피가 흐르는 우리 민족이구나'라고 느꼈다.

-북한 선수단의 선수촌 생활 이야기를 좀 들려주면?

▶우리 선수촌 음식이 워낙 다양하게 나와 식사는 아무거나 잘 먹었다. TV는 넣지 말라고 해서 방에서 뺐다. 신문 등 서적도 반입을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엔 선수'임원단이 쓸 생필품을 모두 가져왔다고 얘기했는데 선수촌에서 생수와 휴지, 여성용품 등을 다 넣어줬다. 야식도 시켜줬다. 치킨이 주된 야식 메뉴였는데 잘 먹었다. 음료수는 국산 주스를 이용했다. 북한 선수단 임원진하고는 선수촌 관계자들과 선수촌 내에서 맥주도 한잔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우리도 동의합니다"를 연발하며 그들은 아주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식당에서 냉면이 메뉴로 나오니 "평양 옥류관으로 오시라요" 하면서 즉석 초대도 했다.

-북한 선수단을 보면서도 느꼈겠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정치적으로도 북한이 중대 변화를 가져왔다. 스포츠가 역할을 한 것인가?

▶체육회 생활을 오래 하면서 느낀 것인데 스포츠의 강점이 대단하다. 안 통하는 곳이 없다. 내 신조가 스포츠를 통한 신가치 창출이다. 스포츠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이 때문에 스포츠는 투자한 만큼 가치가 나온다. 이번에 스포츠를 통해서 남북이 만나지 않았는가? 중국과 미국이 수교를 할 때도 핑퐁외교가 있었다. 스포츠는 국제적 갈등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기본 이념도 갈등 해소다. 국제대회를 지켜보면 대부분 단장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인 또는 경제인이다. 이 사람들이 스포츠를 계기로 교류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스포츠의 국제 교류 기능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대구시와 경상북도 등 지방정부도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경북체육회에 있을 때 인도네시아 서자바주와 교류를 했다. 서자바주는 인구 5천만 명에 이르는 큰 지역인데 인도네시아 전국체전이 열리면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인도네시아 전국체전은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것이어서 엄청난 규모다. 그런데 그 큰 대회에서 매번 주 규모답지 못한 성적을 올리니 가슴이 답답했다. 경북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경북의 경기 지도자들을 채용하도록 했다. 태권도 유도 복싱 등 우리 지도자를 파견했다. 지난해 서자바주가 수도 자카르타를 제치고 전국체전 1등을 했다. 우리 지도자들의 해외 취업도 실현하고 서자바주에 경상북도라는 이름도 심었다. 서자바주가 체육에서 돌풍을 일으키니 서자바주 사례가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경기인이 아닌 선수촌장으로서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앞으로도 이 선수촌을 더 크게 도약시켜야 할 텐데?

▶태릉보다 면적이 4배 이상 커졌고 생활하는 선수들은 3배나 많아졌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 등 재원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내가 여기에 올 수 있게 된 이유처럼 정말 운영을 잘 해야 한다. 시설이 커졌는데 왜 돈을 더 안 주느냐고 돈 타령만 할 수 없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모든 체제를 재점검하고 전산화 비중을 높여야 한다.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빼는 전략도 써야 한다.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도 끌어올려야 한다. 8월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이 150일 정도밖에 안 남았다. 지금 정확한 전력 분석부터 해야 한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이 두각을 나타내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길지 고민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촌이 태릉에서 진천으로 옮겨왔는데 선수들만의 시설이 아닌, 국민의 시설로 만드는 방안은 없나?

▶태릉선수촌에 있을 때 선수촌 앞 가게에 라면을 사러 갔는데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40년 넘게 태릉선수촌 바로 앞에서 가게를 지킨 주인이 선수촌에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왜 선수촌이 선수들만의 공간이어야 하나? 진천선수촌은 오픈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선수들 훈련에 지장이 없는 한 국민들이 이 시설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 개방화 시대 아닌가? 체육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오고 싶어할 테고 일반 국민들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여기는 굉장히 넓다. 공간 전체를 대공원화하는 작업에도 들어갈 것이다.

-그냥 시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지 않나?

▶국가대표 스타 선수들과 국민들이 만날 수 있는 '만남의 날'을 도입할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국민들의 소통의 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선수촌에 왔을 때 이 내용을 보고했다. 대통령도 "아주 좋다"고 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곧 밑그림을 그려 시행할 것이다. 국민들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면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영하 15℃까지 떨어지는 추위 속에서 선수들은 반바지를 입고 뛴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국민들이 감동할 것이다. "국민들이 보러 올 수 있도록 해도 되느냐"고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많은 선수들이 찬성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관중이 있는 상태에서 시합을 하는데 연습 때 관중이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준비를 잘해 국민들이 정말 즐겁게 보고, 감동도 느껴 가는 관람 코스를 준비해 보겠다.

-내일모레면 일흔의 나이인데 공직 생활을 너무 오래하는 것 아닌가?

▶내가 복이 많다. 경북도청에서 공무원 32년, 경북체육회 사무처장 8년, 선수촌장 1년을 했다. 특별한 건강관리도 안 한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평생 피우고 있다. 좋은 것만 보고, 즐겁게 산다는 것을 신조로 하고 왔더니 여기까지 왔다. 병원에 가보니 내 신체 나이가 58세라고 한다. 선수촌장이 차관급이라는데 나는 촌장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급을 앞세우고 살면 실적을 못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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