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 오차도 안돼! 불과 흙의 예술
옹기는 흙과 불의 예술이다. 옹기는 흙을 빚기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가마의 불에 따라 빛깔이 다르다. 그래서 옹기는 각기 다른 얼굴을 갖고 태어난다. 옹기 작품은 기다림과 비움의 미학이 작동한다. 욕심 없는 도공의 마음과 순리에 따른 자연의 조화가 온전한 옹기를 탄생시킨다.
상주에 사는 옹기장이 정대희(60) 씨는 6대째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들고 있다. 그에게 옹기는 인생이자 숙명이다. 어릴 적부터 흙을 만지며 놀다 보니 자연스레 옹기장이의 길을 걷게 됐다. 그의 부모도 옹기장이로 살아왔다. 그의 몸속에는 도공의 피가 흐르고 있다. 발 물레를 돌리며 흙을 빚고 소나무를 태운 잿물로 유약을 사용하고 나무를 때 옹기를 굽고 있다. 조선시대 전통의 맥을 그대로 잇고 있는 그는 누구도 흉내 못 내는 자신만의 옹기를 추구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흙으로 만드는 그릇 중 최고 경지의 작품을 꿈꾸고 있다.
◆옹기는 만드는 것 아니라 짓는 것
상주시 이안면 흑암리에 위치한 '상주옹기' 요장. 장발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고 턱수염콧수염이 덥수룩한 정 씨가 발로 물레를 돌리며 옹기를 빚고 있다. 큰 옹기를 제작하는 데는 찰흙 80~100㎏이 필요하다. 그는 우선 물레 틀 위에 옹기 바닥 흙을 깔았다. 그리고 미리 뽑은 가래떡 흙을 어깨에 들쳐메고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한 겹, 두 겹 흙을 올려 엄지손가락으로 위 흙을 뭉개 아래 흙과 붙여나갔다. 여기에선 흙을 잘 짓눌러줘야 흙 속의 공기를 뺄 수 있다. 흙 쌓기로 옹기 모양이 반쯤 완성됐을 때 참숯불을 옹기 속 중간에 매달았다. 쌓은 흙을 말려줘야 빚은 옹기가 무너지지 않는다. 흙 쌓기 도중에 흙판으로 두드리고 깎고 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흙 속의 공기를 제거하고 모양을 바로잡기 위한 과정이다. 그의 손놀림은 신의 손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정갈하다. 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표정이 엿보였다. 흙을 쌓을수록 옹기는 무겁다. 발로 물레를 돌리기도 버겁다. 작업 2시간이 지나서야 옹기 성형이 끝났다. 그는 "옹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며 참았던 숨을 내쉰다.
◆소나무 잿물로 만든 천연 유약 사용
그는 옹기를 만들면서 잿물 천연 유약을 사용한다. 700년 전 조선시대 전통 제작 방식으로 옹기를 빚는 것이다. 잿물 유약은 소나무를 태워 나오는 재를 청정수와 일정 비율로 혼합해 숙성, 정제 과정을 거쳐 만든다. 완성된 잿물 유약은 입자가 곱다. 잿물 유약은 아버지의 고조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유약이다. 천연 잿물을 사용하면 건강에 좋고 옹기가 숨을 쉬는 특징을 갖고 있다. 성형을 마친 옹기에는 물고기와 거북이를 새긴다. 옹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복과 건강을 주기 위해서다. 옹기는 그늘에서 3개월간 서서히 말려야 한다. 옹기가 30% 정도 건조되면 유약을 바른다. 그래야 잿물이 적당하게 스며든단다. 유약을 발라 말린 옹기는 회색빛을 띠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일반 옹기의 유약은 광명단을 사용한다. 광명단은 납을 산화시켜 구워 만든다. 광명단 유약은 600~700℃ 저온에서도 옹기를 구워낼 수 있다. 그는 "광명단 유약은 납 성분이 들어 있다. 건강에 뭐가 좋겠어. 진짜가 진짜로 살아보고 싶어도 가짜가 너무 판을 치니"라며 혀를 찼다.
◆7박 8일 고온 장작불에서 태어난 옹기
유약을 바른 옹기가 완전히 마르면 가마에 구워야 한다. 그는 나무를 때는 6칸짜리 전통 가마를 갖고 있다. 가마에는 큰 옹기 40여 개가 들어간다. 땔감으로 소나무만 사용한다. 한 번 굽는 데 소나무는 20t 정도 들어간다. 7박 8일간 불을 땐다. 일반 도자기가 3일간 불을 때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가마에 불을 때는 동안 그는 잠을 자지 않는다. 불이 꺼져서도 안 되고 불의 세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마 불의 온도는 무려 1천250~1천350℃ 고온까지 올라간다. 이런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담금질이 된다. 그래야 골고루 굽히고 고운 빛깔이 나온다. 땔감인 소나무는 다섯 빛깔을 갖고 있다. 푸를 땐 청색, 마르면 금색, 껍질은 갈색, 속은 흰색, 송진은 흑색을 띤다. 그래서 불을 때면 다섯 색의 빛깔이 어우러져 오묘한 색깔이 나온단다. 습기가 없는 봄, 가을 두 차례 불을 땐다. 옹기가 습기를 머금고 가마에 들어가면 폭발해 모두 깨진단다. 구워낸 옹기 색깔은 대체로 주황색이다. 작품은 50%도 나오기 힘들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옹기를 깨지 않는다. 옹기도 자연이 준 하나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양의 기운 나오는 옹기는 발효도 탁월
"조선의 그릇은 만지면 죽어요. 그만큼 위력이 있다는 거지. 그래서 힘이 있는 그릇, 혼이 담긴 그릇, 기운이 나오는 그릇을 만들어야 될 것 아니냐고."
그는 그릇에 음과 양의 이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옹기는 양의 기운인 온기(溫氣)가 나온다. 물레를 오른쪽으로 돌려 성형하고 흙 쌓기를 아래서부터 위로 하고 붉은 흙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는 음의 기운인 냉기(冷氣)가 나온다. 작업 과정이 옹기와 정반대고 흰 흙을 사용한다. 옹기 작업은 하나의 기(氣) 작업이다. 옹기 성형도, 옹기를 굽는 작업도 하나의 기(氣)를 불어넣는 것이다. 옹기에는 된장, 고추장처럼 발효의 예술이 숨어 있다. 발효는 양의 그릇인 옹기가 아니면 안 된다. 그는 인간에게 칭찬받을 생각은 없다. 인간은 마음에 들면 칭찬하고 마음에 안 들면 욕하는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 대신 흙과 불은 0.005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 치의 변수도 없는 자연에게 인정을 받고 싶을 뿐이다. 그는 작품 만들기에는 욕심과 고집이 있지만 소유에는 집착하지 않는 호방한 성격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