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늙은 왜가리의 설움

입력 2018-03-19 00:05:00 수정 2018-10-12 09:38:00

'왜가리, 나가거라!' '왜가리, 반갑네!'

한 새를 두고 대구와 경북의 대접이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다. 그것도 다른 곳에서는 일부러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사람이 보호하기까지 하는 새인 왜가리가 그렇다.

대구 도심에 자리 잡은 옛 제일모직 터인 삼성창조경제혁신센터의 오래된 히말라야시다 나무에 살던 왜가리는 최근 편히 앉아 쉴 나무조차 없어지고 대신 이리저리 얽어 놓은 철사줄로 보금자리에서 내쫓기는 등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다. 반면 경북 의성 신평면 청학마을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왜가리 축제'를 열고 전국에서 찾는 손님맞이에 나설 만큼 귀한 대접이니 같은 새의 운명치고는 얄궂기만 하다.

한때 100여 마리가 찾아 둥지를 틀면서 '대구 명물'로 일컬어지던 왜가리가 갑자기 올 들어 푸대접을 받게 된 까닭도 어이없다. 왜가리의 소음과 배설물 민원이 1년 동안 20여 건에 이르고 세탁비와 세차비를 요구하는 항의가 많다는 등이 이유다. 주민 민원은 어쩔 수 없겠지만 왜가리가 아예 앉을 수 없도록 나뭇가지를 자르고 철사줄로 얼키설키 하늘을 얽었으니 이는 왜가리를 잡기 위한 올가미나 다름없다. 허공에 친 올무와 무엇이 다를까.

특히 대구 주변 신천과 금호강의 먹잇감이 늘어난데다 장거리 비행이 어려운 늙은 왜가리가 대구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머물고 있는 형편을 감안하면 왜가리를 몰아내기 위한 이러한 대구 사람의 인심은 정말 야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러 먹이를 주어 보호하거나 의성처럼 왜가리 축제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철새 약자'와도 같은 늙은 왜가리의 머묾조차 참지 못하니 말이다. 그 피해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되살필 만하다.

날개를 다쳐 날 수 없는 암컷을 두고 크로아티아에서 1만3천㎞ 먼 아프리카로 떠났다 해마다 봄이면 한 할아버지의 정성어린 보호를 받으며 기다리고 있는 암컷 곁으로 되돌아오는 수컷 황새를 기려 정부에서 동영상까지 만들어 '국민 황새'로 알린 남의 나라 이야기가 부럽기만 하다. 암수 황새의 애틋한 사랑도 그렇지만 다쳐 먹이사냥은 엄두도 못 내는 암컷 황새를 위해 기꺼이 둥지를 짓고 먹이를 아끼지 않는 할아버지 사랑 또한 돋보인다.

대구 주변 환경이 깨끗해지고 먹이 또한 넉넉해지면서 대구를 떠나지 않은 왜가리가 굳이 내몰아야 될 새인가. 특히 이제는 늙어 어쩔 수 없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왜가리까지. 대구 사람, 다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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