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뽑는 선거날이었다. 앞서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타계하자, 관심은 대통령보다는 누가 부통령이 되느냐에 쏠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85세로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부통령이 사실상 실권자였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은 이기붕이 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랐지만, 현직인 장면 부통령의 인기가 대단히 높았다. 이에 이승만 정권은 선거 당일 새벽에 40%나 되는 표를 미리 투표함에 투입해놓고, 유권자들을 3, 5, 9명씩 조를 짜 조장이 조원들의 기표를 확인한 뒤 투표함에 넣도록 했다. 개표 결과 이승만 963만 표, 이기붕 833만 표, 장면 184만 표로 나타났다.
그날 밤 전국 곳곳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마산은 시위가 심했고, 경찰의 발포로 8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했다. 4'19 혁명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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