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중반 조선사회에 '명랑'(明朗)이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최고의 유행어로 등장한다. '명랑'은 신문이나 잡지 기사에 빈번하게 등장한 것은 물론 소설 제목으로까지 채택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명랑',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유쾌해지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만들어내는 유쾌하고 활발한 정조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들여다보면 1930년대는 결코 명랑할 수 없는 시대였다. 일본제국이 중일전쟁의 전시체제에 돌입함에 따라서 조선인은 조선어 사용을 금지당했고, 일본 이름으로 창씨개명해야 했다. 아울러 조선 청년이 일본제국 군인으로 이국 땅 중국으로 가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강제로 요청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어떻게 명랑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박태원의 '명랑한 전망'(1939)은 1930년대 중반 조선에 유포된 '명랑'이라는 정체불명의 정조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다.
'명랑한 전망'은 엘리트 회사원 희재가 연말 보너스로 받은 두둑한 돈 봉투를 들고 약혼녀 혜경에게 선물할 보석 반지를 사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이 화려하고도 멋진 커플은 오해로 인해 결별한 후 제각각 바람직하지 않은 상대와 애정 관계에 들어간다. 혜경은 방탕한 유부남과 동거를 하고, 희재는 카페 여급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는 일탈을 경험한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은 두 사람이 다시 서로 결합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방탕한 유부남과 동거하는 일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카페 여급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여성과 그녀 사이에서 낳은 딸까지 버려가면서 부잣집 딸과 재결합한 엘리트 청년의 행위가 과연 '명랑한 전망'으로 칭송받을 일이었을까.
어이없게도 소설은 자식도 저버리고 도리도 저버린 희재의 냉혹한 행위를 '명랑한 전망'이라며 당대 남녀 관계의 바람직한 전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1930년대 조선 사회의 명랑 선풍은 이처럼 잔혹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거지나 부랑자 정리를 내건 도시 명랑화, 애상적이고, 나약하며, 퇴폐적 음조를 배척하기 위한 음반 명랑화, 도박 축출을 내건 농촌 명랑화 등, 1930년대 조선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명랑'은 유쾌, 활발이라는 원래 의미와는 무관하게 일사불란한 규율이나 통제와 동등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조선 사회에서 사회의 건전성을 해치는 카페 여급은 척결 대상이지 사랑의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제국에 규율과 통제는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70년도 더 지난 최근까지도 규율, 통제, 획일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1930년대 '명랑'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한 규율과 통제의 유령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외형을 바꾸어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은 그런 전근대적 전통과 관습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투 운동이 가해자 대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잔재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한 바람직한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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