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뿜는 활화산 '벚꽃섬'…생뚱맞은 이름 이유 있었네
가고시마의 모든 일정은 중앙역에서 시작하여 항구 지역인 사쿠라지마행 페리 탑승장과 돌핀포트에서 끝을 맺는다. 중앙역 주변에는 다양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각종 매력물이 즐비하다. 항구는 사쿠라지마로 향하는 페리뿐만 아니라 돌핀포트 해양수족관 등 놀이시설들도 갖춰져 있고 멋진 야경도 즐길 수 있다. 중앙역과 항구 사이에는 올해로 106년이 된 노면열차가 운치 있게 달리며 시내의 여러 곳을 연결해준다.
가고시마 중앙역은 멀리서도 한눈에 딱 돋보이는 아뮤플라자(アミュプラザ)와 맞닿은 대관람차가 두드러진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91m 높이의 대관람차는 가고시마 시가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500엔만 내면 15분간 빙빙 돌면서 시가지를 샅샅이 보여준다. 단, 밑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니 살짝 심장이 떨리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가고시마는 낮에는 덴몬칸(天文館), 저녁은 야타이무라(屋台村)라고 한다. 즉 낮에는 번화가인 덴몬칸에서 놀면서 먹고 쇼핑도 하고 밤이 되면 중앙역 인근에 있는 일명 '일본식 포장마차' 거리인 야타이무라에서 나이트 문화를 즐기는 거다. 질퍽한 나이트 문화가 아닌 일본인들과 어깨를 맞대면서 옹기종기 붙어 불야성을 이루는 거리문화를 만끽할 수 있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등과 더불어 가고시마에서 운행 중인 노란색 노면열차는 1912년 12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하여 100년을 훨씬 넘겼음에도 지금도 씩씩하다. 노면 철로를 따라 얇게 형성된 잔디밭은 더욱 정감이 가는 운치를 준다. 가고시마에 온다면 아무 생각 없이 노면열차에 올라앉아 철거덕철거덕 시내를 돌아다녀도 전혀 아까운 시간이 아니다. 중앙역 1층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몸을 녹이고 노면열차 길을 따라 항구 쪽으로 향한다. 때마침 오락가락하던 비가 점차 거세진다. 마냥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지체할 수 없어서 부리나케 돌핀포트 쪽으로 달린다. 중앙역에서 약 7~8㎞ 내외이다. 맑은 날씨라면 금세 왔을 길을 비가 와서 구글맵을 제대로 못 보고 빙빙 돈 탓에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돌핀포트에는 대형수족관, 쇼핑몰, 각종 식당들이 즐비하여 몇 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야경도 운치 있는 데이트 코스다.
◆가고시마 라면축제-올해의 라면왕은?
마침 운이 좋은 날이었다. 사쿠라지마로 가는 항구 근처에 위치한 돌핀포트에서 '제4회 가고시마 라면축제'가 열린다. 남의 땅에서 색다른 행사의 면면을 보는 건 행운이자 행복이다. 돌핀포트 앞 약 6천600㎡(2천 평) 이상의 야외행사장에서 열린다. 우리에게는 라면이라면 대기업에서 찍어내는 인스턴트 라면이 전부지만 일본은 라면의 강자답게 가고시마의 18개 전통 라면 전문점이 참가하여 각자의 축적된 레시피로 만든 라면을 선보인다. 주말이면 1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가격은 700엔 단일 가격으로 레시피나 주방장의 특장점을 보고 소비자가 즉석에서 선택 후 주문한다. 해당 가게 앞에 줄을 서면 즉석에서 휘리릭 라면을 만들어준다. 근처에 준비된 시식광장에서 호호 불면서 먹는다. 총 판매 숫자와 소비자가 붙인 '맛있어요' 스티커를 집계하여 올해의 라면왕을 뽑는다.
야외에서 하는 행사지만 물 흐르듯 깔끔한 진행과 운영이 돋보인다. 18개의 라면가게 중 11번째 집 라면을 선택하여 점심으로 먹었다. 얼큰한 우리 입맛에 길들여진 탓인지 진한 육수에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일본 라면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지만 기념으로 여기며 지역의 특화된 먹거리에 재미를 가미하여 축제로 승화시킨 그들의 노력에 한 표를 던진다. 우리도 벤치마킹하여 지역의 이색적인 먹거리를 장기적인 차원에서 축제와 연계하여 발전시킨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본다. 단, 전문가적인 냄새가 밴 축제라야 한다.
◆공포보다는 경외의 대상인 사쿠라지마
시간만 허락한다면 가고시마가 자랑하는 일본식 정원인 '센간엔'(仙巖園)을 보고 싶으나 사쿠라지마에서의 일정이 촉박하여 다음을 기약한다. 라면으로 시장기와 비로 인한 추위를 잠시 녹인 후 5분 거리에 있는 사쿠라지마행 항구로 간다. 사쿠라지마행 페리는 매시간 서너 차례 운항한다. 15~20분 정도면 도착한다. 비용도 160엔으로 싸다. 다만, 자전거는 추가 비용으로 270엔을 더 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페리를 탑승할 때는 보통 100~150엔 정도 추가 비용을 냈는데 사쿠라지마 페리의 자전거 운송료는 조금 비싸다. 24시간 운항을 하고 배 규모도 꽤 크기 때문에 별도의 예약 없이 그냥 타면 된다. 돈도 도착해서 낸다.
아소산(阿蘇山)이 폭발하기 전까지 일본 내에서 유일한 활화산이던 사쿠라지마에 드디어 도착한다. 1914년 대폭발로 분출물이 쌓여 섬 동쪽 니치난(日南) 방향의 오스미반도(大隅半島)와 이어져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섬은 아니다. 2013년 다시 폭발한 이래로 1,100m 고지에 위치한 미나미다케산(南岳山)에서는 계속적으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산 중앙과 주위 마을과는 불과 4~5㎞ 정도인데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불덩이를 근처에 끼고 사는데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그만큼 요소요소에 재난을 대비하여 방재시설이 잘 되어 있다. 연기를 뿜어내는 활화산인 사쿠라지마는 가고시마 어디에서든 잘 보인다. 좌우 대칭이 잘 잡혀 언뜻 보기에도 잘생긴 산이다. 사쿠라지마는 '벚꽃섬'이라는 뜻인데 활화산치고는 다소 생뚱맞은 애칭이다. 가고시마 사람들은 사쿠라지마를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연일 뿜어대는 활화산 연무를 보면서 자부심과 일종의 역동성을 느끼는 듯하다.
◆사쿠라지마는 어디서 보아도 잘생겼다
사쿠라지마를 즐기는 방법은 모두 세 가지 측면에서 가능하다. 첫째로, 먼발치서 바라보는 사쿠라지마다. 가고시마 시내나 시로야마 공원(城山公園) 등 멀리서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조망을 감상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살짝 구름이 드리워진 사쿠라지마는 더 멋이 있다.
둘째, 가까이서 보는 사쿠라지마다. 대부분의 관광 포인트는 얼마만큼 가까이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미나미다케산을 리얼하게 느끼느냐는 것이다. 가라스지마(烏島), 구로카미 전망대나 373m 높이에 위치한 유노히라 전망대(湯之平展望所) 등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서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잘생긴 다케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셋째, 사쿠라지마섬 주위를 돌면서 체험하는 것이다. 전체 둘레가 36㎞로 자전거로 도는 데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도는 내내 때론 좁은 길과 바다를 다 안을 듯한 해안도로를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가고시마에서 오후 느지막이 출발한 탓에 사쿠라지마항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4시를 지났다. 항구 도착 후 오른쪽 안내센터로 향한다. 배에 자전거를 싣고 온 사람은 달랑 나 하나다. 지도를 받고 대략적인 포인트 설명을 들은 후 그 길로 냅다 달린다. 가라스지마 전망대와 전 세계 음악인들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는 아카미즈(赤水) 전망광장 등을 빠른 속도로 둘러본다. 벌써 5시 30분이다. 갈등한다. 호텔로 향할 것인가, 유노히라 전망대를 갈 것인가? 유노히라 전망대는 사쿠라지마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해발 373m 위치에 있다. 뭐 별것 아니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오르막만 5.8㎞다. 각오하고 올라가야 한다. 어둑해지지만 가보기로 결정한다. 연신 숨이 차오른다. 쉼 없는 오르막만 약 한 시간여 달려 드디어 유노히라 전망대에 도착했다. 벌써 어둠이 자욱하다. 바람이 세차다. 이 넓은 전망대 앞에 혼자다. 달빛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다케산을 혼자서 다 가진 듯 독차지했다. 비도 살짝 뿌린다. 몽환적이다. 구름에 살짝 잠긴 살아 있는 다케산을 보면서 올 한 해 좋은 기운을 달라고 기도한다. 더욱 어두워진다. 살짝 공포감이 밀려온다.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어둑해져 의지할 것은 달빛과 자전거 랜턴 불빛뿐이다. 내리막만 약 5㎞, 거기서 또 7~8㎞ 더 달려야 한다.
7시 30분도 훨씬 지난 시간에 사쿠라지마섬 안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한다. 숙소를 섬 안에 잡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쿠라지마섬 안에는 유스호스텔을 비롯하여 두세 개의 온천이 구비된 숙소가 있다. 썩 좋은 시설은 아니지만 섬 안에 있다는 것과 바다를 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등을 감안하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좋은 경험일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고시마에서 부리나케 와서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쿠라지마를 아주 조금만 느끼고 돌아가는 것이리라. 달빛에 비친 밤바다를 보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야외 온천을 즐긴다. 완전한 자유다. 꼭 다시 여기 오리라 다짐한다.
이제 하루를 보내고 내일의 사쿠라지마를 기약한다. 사쿠라지마 일주도로는 마치 울릉도를 닮았다. 업다운이 계속 이어지고 때론 길도 좁다. 하지만 탁 트인 멋진 바다 조망을 내내 선사한다. 내일은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사쿠라지마를 지나 가노야시(鹿屋市)를 거쳐 니치난해안국정공원이 시작되는 시부시(志布志)까지 가야 한다. 서둘러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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