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김기덕 폭력으로 완성시킨 예술의 부조리

입력 2018-03-16 00:05:00 수정 2022-07-25 16:43:38

영화계 거장 숨겨온 얼굴

예술의 범위를 특정 기준으로 설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과 비현실, 가시권에 들어오는 형체와 그 반대의 것들이 표현방식에 따라 또는 해석에 따라 모두 예술이란 틀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이 폭넓은 범위 안에서 소위 '작품'이란 것을 내놓을 때, 그 목적이 어떻든 간에 작가는 감상자의 감정과 이목을 홀리기 위한 노력을 한다. 굳이 '대중적'이든 특정 대상 없이 그저 자기 만족감에 만들어낸 것이든 어쨌든 기본적인 소통에 대한 생각을 전면 배제한 상태에서 공개되는 작품은 없다. 그래서 작가는 감상자들의 앞에서 더욱 돋보이기 위해 적합한 표현방식을 찾게 되며, 경쟁력 있는 표현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작가는 일반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만들거나 '평범함'의 영역에서 벗어난 기행을 통해 스스로 위치를 확보하려 노력하곤 한다. 그 기행은 가령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다고 해도 '예술'이란 포장지 속에 가려 지적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대중에 공개된 김기덕 감독의 폭력적인 행동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대상으로 행하던 김기덕의 폭력, 예술이란 포장지 속에 싸여있던 알맹이는 독한 냄새와 함께 썩어 있었다.

◆촬영장에서 행한 폭력 수면 위로 드러나

지난 6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내용은 대중에게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김기덕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 그리고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공개된 거장의 실체. 촬영 현장에서 여배우와 여자 스태프들을 희롱하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서슴지 않던 김기덕의 이면을 알려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그의 문제적 행각을 기정사실화했다. 김기덕이 자신의 페르소나로 불렸던 배우 조재현, 그 외에도 몇몇 절친한 동조자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현장에서 여배우와 스태프들을 희롱하고 성폭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방송은 세계적으로 '미투(Me Too) 운동'이 일어나 젠더 이슈가 사회적 논쟁거리로 전환된 현 상황과 맞물려 국내외에서 비난 여론을 끌어냈다. 김기덕이 'PD수첩'의 방송 내용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의 내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앞서 김기덕은 자신의 연출작 '뫼비우스'(2013)에 캐스팅됐다가 하차한 한 여배우의 폭로로 촬영 현장에서 행한 폭력적 행동에 대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여배우는 '뫼비우스' 촬영 당시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뺨을 때리고 사전에 협의된 바 없이 남자 배우의 신체 부위를 만지게 하는 등 폭력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기덕은 '뺨을 때린 건 폭행 장면 연기지도를 위한 것'이며 '시나리오에 없는 베드신을 강요한 사실은 없다'고 맞섰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폭행혐의만 인정해 5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이후로도 김기덕은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공식석상에서 '유감'을 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의 연출방식과 영화제작 시스템이 바뀌었으며 그래서 4년이나 지난 일을 끄집어내 자신을 난감하게 만든 고소인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PD수첩'을 통해 또 한 번 폭로가 이어지면서 김기덕은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감독으로 성장

김기덕은 홍상수와 함께 세계 주요 영화제의 경쟁 부문 진출 및 수상 사례를 만들어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영화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다만 홍상수가 프랑스 예술영화의 표현방식을 차용해 자신의 문법을 만들어내 지적인 이미지로 호평받은 데 반해 김기덕은 거친 표현법 때문에 데뷔작 '악어'(1996년)를 내놨던 당시부터 평단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특히 극 중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묘사를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당시 평단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유지나 동국대 교수를 필두로 '악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이후로도 김기덕은 오랫동안 제도권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이단아로 살아야 했다. 그래도 일각에서는 정성일 등 평단에서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는 이들을 위주로 작품에 대한 호평이 나오기도 했다. 양 갈래로 갈라진 평단의 분위기는 김기덕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휩쓸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차츰 호평 위주로 바뀌었다. 김기덕 역시 초창기에 보여줬던 거친 표현을 자제하고 순화된 연출로 대중과 평단에 다가서며 지지층을 넓혔다. 10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에 이르러서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러 장르의 특징을 혼합해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차분한 느낌의 시적인 영상에 자연의 소리를 섞으며 종교적 색채까지 가미해 눈길을 끌었다. '악어'를 비롯해 '파란대문'(1998), '섬'(2000), '수취인불명'(2001), '나쁜 남자'(2001) 등 초기작에서 엿보였던 피해의식과 특히 여성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이 상당 부분 사라져 '김기덕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기점으로 표현력이 풍부해졌으며 물론 '피에타' 등에 과거와 같이 센 설정이 재등장하긴 했지만 굳이 의도적으로 거칠고 직접적인 묘사를 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해외 영화제의 큰 상을 거머쥐고 국내에서도 제작자의 면모를 보이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웠다.

◆'야생'이란 표현에 가려진 '야만'

따지고 보면, 김기덕은 '배운 자'들과 '가진 자'들이 쌓아둔 영화계 담장 진입 방법을 본능적으로 캐치한 사람이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자가 인간의 감정과 욕망, 또 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을 때 '아는 척'을 하거나 '있어 보이게'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김기덕은 차라리 거칠고 센 묘사를 통해 스스로 속내를 고스란히 반영해 '파격'으로 어필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그 거침없는 연출은 10여 년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통해 진화하며 결국엔 자리를 잡았다.

어떤 예술 장르를 막론하고 소재와 표현에 대한 작가의 집념이 꾸준함과 맞물려 성과를 얻게 되면 결국 평자들과 대중도 그를 향해 돌아서기 마련이다. 김기덕도 그랬다. 여전히 대중이 김기덕의 작품을 어려워하거나 또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그 거친 표현에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평단에서는 그의 작품을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며 설명서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김기덕의 꾸준함이 평단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평론가 정성일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나오기 직전 약 20여 명에 달하는 필자들과 함께 펴낸 책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이 대표적인 예다. 김기덕과 그의 작품이 만들어낸 다양한 이슈,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담았다.

이처럼 김기덕의 영화는 결국 예술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김기덕에 대한 영화계의 평판과 특히 여성을 대하는 김기덕의 언행은 작품과 별개의 가십거리로 회자되곤 했다. 영화 촬영현장에서나 영화제 등 페스티벌에서 김기덕을 지켜본 이들에 의해, 혹은 김기덕과 직접 연관됐던 여성들로부터 구전된 관련 에피소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면서도 '예술가의 기행'으로 치부돼 큰 문제없이 넘어가곤 했다. 또는 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의 관계를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의혹이 그저 의혹에서 머물렀기에 누구도 김기덕이 행한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며 김기덕의 영향력하에 있는 약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기면서까지 폭로자로 나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직접 '그는 가해자였고 나는 당했다'라고 밝히고 나서야 김기덕의 '기행'이 '폭력'이었음을 명확히 인지하게 된 현실. 그래서 김기덕의 영화세계를 지지했던 필자의 심정 역시 참담하다. 장점을 찾아내 부각하고 김기덕과 대중의 친화를 위해 글을 쓰던 과거를 번복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김기덕의 예술이 폭력으로 빚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금 그의 작품을 대중에 알리는 것은, 특히 젠더 이슈에 대한 표현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됐다.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완성된 결과물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예술이 될 수 있지만, 그 안에 폭력이 동반됐다면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에 동화되는 건 불가능하다. 기운 빠지는 순간이다.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8. 3. 6. < 성추문 김기덕 감독 영화 '나쁜남자''뫼비우스'재조명 '충격적인 내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5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고 보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 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