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유 먼저 챙기고, 은퇴 후 할 일도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50대는 불안하다. 자녀들은 아직 독립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계속 보살펴 드려야 하는데 직장에서의 은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비단 서민들만이 아니다. 경제적 여유를 갖춘 중산층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제2, 제3의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 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은퇴를 앞둔 50대의 고민과 대책을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56세 조합 임원 박노력 씨는…
국민연금·작은 건물·쇼핑몰 수익까지…적은 수입도 여러개 모으면 노후 삶의 질 올라
▶소규모 조합의 임원을 맡고 있는 박노력(가명·56) 씨는 공군 부사관 출신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 9년간 복무했다. 군 복무 중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에 군생활을 그만뒀다. 그동안 3천만원을 모았다.
"전역하자마자 고향 친구가 나타나 사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첫날 400만원, 열흘 뒤 또 500만원을 빌려갔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일종의 다단계였습니다. '큰일 난다'는 시집간 여동생의 말에 그만두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1천만원 가까운 돈을 날려버렸습니다."
세상물정을 몰랐던 박 씨는 근무하던 공군 비행장 부근에 1천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전셋값이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주인이 3개월 만에 전세금을 2천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수중에 남은 돈을 모두 털어 전세금을 올려줬는데, 1년도 안 돼 집주인이 부도를 냈고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전세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확정일자도 받아놓지 않았고, 경매를 한다고 해서 집을 비워주는 바람에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밤에는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고, 낮에는 카드'보험대리점 영업을 했다. 밤낮없이 투잡을 뛰었지만 돈이 되지 않았다. 도통 사회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 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교육업체 대리점을 하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몇 달간 백수생활을 하다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인력관리업체에 취직해 학업과 직장을 병행했다. 정직원이긴 했으나 임금은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2001년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직장을 얻으면서 안정을 찾고 결혼도 했다. 박 씨에겐 부인과 고교생 딸이 하나 있다. 박 씨의 연봉은 4천500만원쯤 되고, 부인은 결혼 이후 지금까지 맞벌이를 계속해왔고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연봉 2천800만원을 받는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은퇴가 눈앞에 닥치면서 부부의 위기감은 한껏 고조됐다. 부부간의 대화가 많아졌고 내용도 점차 현실적이다.
은퇴 후 안정적인 소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준비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연금보험 등 보험에 3개 가입했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모두 중도해지했고, 모아놓은 돈도 거의 없다. 현 직장에서 18년째 근무 중인 박 씨의 국민연금 예상수령액은 100만원에도 못 미친다. 부인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은 8년이다. 연금을 받으려면 최소 10년은 채워야 한다. 박 씨 부부는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각각 3년 및 4년간 국민연금을 납부했으나, 퇴직하면서 일시금으로 받은 적이 있다. 부부는 국민연금 반환일시금을 다시 납부하는 국민연금 반납금 납부신청을 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이렇게 한 결과, 부부의 국민연급 예상수령액 합계는 150만원이 되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확보한 셈이다.
다행히 박 씨 부부에게는 결혼비용을 아껴 경산시장 부근에 100㎡(30평)짜리 헌 집을 사둔 것이 있다. 만일 부부 중 한 사람이 현직을 떠나게 되면 여기에 자그마한 건물을 지어 카페를 운영하거나 임대할 계획이다. 현재 살고 있는 빌라(시가 1억5천만원 상당)에도 박 씨네가 활용할 수 있는 26㎡(8평) 정도의 공간이 있다. 박 씨는 또 수년 전부터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해 월 20만~30만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 이 수입은 은퇴 후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 밖에도 박 씨는 은퇴 후 추가적인 수입과 사회활동을 위해 투자관리사 교육, 각종 조합설립 컨설팅 등 틈만 나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있다. 20만~40만원의 작은 수입이라도 여러 개가 모이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국민연금을 제외하고 한 달에 100만원 정도 추가적인 수입이 있다면 우리 가족의 은퇴 후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어쨌든 건강을 잘 챙겨라. 그러면 (우리 가정은) 행복할 수 있다'입니다."
◇57세 대학 교수 정성실 씨는…
교수인데도 다른 준비 위해 대학원 진학, 자신이 잘 하는 것으로 또다른 인생 설계
▶OO대학 교수인 정성실(가명·57) 씨는 지난해 인생에서 세 번째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사회학을 전공한 정 교수는 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군입대를 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교수 자리에 올랐다. 원래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 대학원 진학은 좀 더 특별하다. '성공적인 은퇴생활' '성공적인 인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다.
"2016년이 은퇴 후 삶을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교수라면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으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입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위기감이 고조되다가 급기야 2년 전에는 임금이 깎이고 동료 교수들이 학교를 떠나는 구조조정이라는 뼈아픈 시련을 겪었습니다. 내 정년이 오기도 전에 대학이 문을 닫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뭐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정 교수는 다채로운 인생역정을 갖고 있다. 첫 직장은 보험사 관리직(총무파트)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건설 현장이라는 콩밭에 가 있었다. 역동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정 교수의 성격에 사무직은 맞지 않았다. 보험사를 다니면서 공과학원에 등록해 '도면 보는 법' 등 건설사로 옮기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1993년 종합건설회사에 입사해 열심히 일했다. 회사 일만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틈틈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봉사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제가 오너(회사 주인)도 아닌데 언제까지 건설사에 남아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적성에 맞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자'면서 사회복지 공부와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건설사를 그만뒀다. 여러 대학으로부터 많은 강의 의뢰가 들어와 건설사에 있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수입도 웬만한 직장인 못지않았다. 시간강사를 하면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고, 겸임교수를 거쳐 2012년 전임교원이 됐다.
이런 인생경력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까. 정 교수는 평생교육 평생학습의 시대가 조만간 올 것으로 전망하고, 교육대학원 평생학습전공을 선택했다. 3년, 5년을 내다보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강의로 생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학습과 강의는 오히려 인생의 의미를 찾는 봉사활동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다행스럽게도 정 교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건물의 임대수익이 있어 경제적 걱정은 크게 없는 편이다. 그렇다고 은퇴 후 생업을 갖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약용버섯 재배로 수익을 올릴 구상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는 매주 한 차례씩 경남 진주 경상대에서 산림복합경영과정(3개월)을 이수했다. 올해는 심화과정인 버섯재배과정에 등록할 예정이다.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위해서는 돈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바빠서 적십자구호활동만 하고 있지만, 하고 있는 공부가 끝나면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봉사와 생업이 균형을 이루는 그런 삶을 은퇴 이후 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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