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평화협정

입력 2018-03-15 00:05:00 수정 2018-10-12 09: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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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수많은 평화협정이나 그와 유사한 조약이 있었지만 지켜진 것은 별로 없다. 협정이나 조약이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독일-소련 불가침조약(1939년)의 붕괴는 이를 잘 보여준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프랑스에 이어 영국을 정복하기 전까지는 소련을 침공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 바탕은 영국과 독일이 서로 끝장을 볼 때까지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란 레닌 유(類)의 '제국주의론'이다. 그때 가서 힘들이지 않고 둘 모두를 집어삼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탈린은 독일과 체결한 무역협정에 따라 수백만t의 전쟁물자를 독일로 보냈다. 1940년 소련의 대독(對獨) 수출은 소련 전체 수출의 절반이나 됐다. 그러나 히틀러는 영국 침공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자 1941년 소련으로 군대를 돌렸다. 이에 대한 사전 경고가 넘쳐났으나 스탈린은 믿지 않았다. 그런 정보는 소련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려는 영국의 술책이라고 확신했다. 그 결과 독소전에서 승리했지만, 군인과 민간인 2천만 명이 희생되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41년 체결된 일본-소련 중립조약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하면 소련은 중립을 지키고, 소련이 독일과 전쟁을 하면 일본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소련으로서는 독일과 전쟁 중 극동에 대한 신경을 끌 수 있고, 일본도 소련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고 동남아시아로 남진(南進)할 수 있어 모두에 '남는 장사'였다.

일본은 이 조약을 맹신했다. 그러나 소련은 지킬 생각이 없었다. 1945년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이미 독일의 항복 후 대일전(對日戰)에 참전하기로 미국과 영국에 약속한 터였다. 약속대로 소련은 1945년 8월 9일 일본이 점령 중인 만주로 쳐들어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소련이 중개자가 돼 전쟁의 종결을 알선해달라는 협정을 소련과 체결한다는 허망한 꿈을 꾸고 있었다.

4월 말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6'25전쟁 종전(終戰)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논의가 합의에 이르고 미국도 이에 동의한다면 평화협정 체결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해줄까?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 약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처칠의 말처럼 평화는 협정이 아니라 평화를 강제할 현실적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과연 우리는 그런 힘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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