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의 새論새評] 북미대화와 '외천명'

입력 2018-03-15 00:05:00 수정 2018-10-16 10:27:15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北 ICBM 도발 노림수 불분명 상황

美 정상회담 수용 이유도 불투명

文대통령 옆 친미 정의용 있어 성사

시대적 대전환 앞 天命 두려워해야

4월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5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 일촉즉발의 살얼음판 같았던 한반도 정세에도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만세라도 부르며 춤을 추고 싶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직은 축배를 들 때도 아니고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상황은 거꾸로 악화될 수도 있다. 이럴 때 공자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라는 '외천명'(畏天命)의 자세를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에는 예외 없이 천명이 작동한다. 당시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대적 대전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함부로 속단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천명을 두려워하면서 조심스럽게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일이다.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때이다. 왜냐하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단순한 논리로는 해석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범주에서 해석할 수 없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다.

일차적으로 가장 큰 미스터리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있다. 아직도 왜 북한이 작년 7월에 '화성-14호'를 발사하여 미국을 도발했는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고려한 큰 계획이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도박이었다. 400년간의 전쟁을 연구한 미국의 정치학자 라이트(Quincy Wright)는 국제적 세력 균형이 깨지면 전쟁이 발발한다고 했는데, 미국 본토를 향한 핵미사일 도발은 동아시아의 군사적 세력 균형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유례없는 고강도 국제 제재와 선제 타격론으로 응수했다. 이는 단순한 엄포로 볼 수 없는 심각한 것이었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뒤늦게 이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미스터리는 미국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흔쾌히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이란과의 핵협상을 무원칙한 양보라고 비판해왔다. 따라서 그가 내놓을 비타협적인 핵폐기 방식을 북한은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고, 설사 그가 북한과 합의점을 찾더라도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1994년 제네바 협정을 미국 의회가 승인하지 않아 무산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북미 핵협상에 스스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또 지난주에 급작스럽게 북미 정상회담을 받아들이고, 이번 주에 돌연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경질하고 대북강경론자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임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끝으로 대북특사단장을 맡았던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존재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먼저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친미론자이다. 그런데 그의 존재로 인해 남북관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켰고 김 위원장과 북미대화를 논의할 수 있었다. 그를 특사단장으로 북한에 보냈고 또 귀국 즉시 미국에 파견한 문 대통령의 판단도 훌륭했지만, 이 중요한 시점에 그가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전율을 일게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나 정 실장은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의 뜻을 예단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천명이 작동할 때에는 매사 신중한 것이 최고이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마치 과거 나폴레옹이 전쟁을 통해 자신이 유럽 전역에 자유사상을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마키아벨리도 그의 명저 '군주론'의 말미에서 천명을 논한다. 다만 공자와 달리 그는 숙명론을 비판하면서 천명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천명에 적대할 경우 망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북미대화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무분별한 돌출 행동이 아니라 천명을 두려워하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모색하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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