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전문가의 생업

입력 2018-03-10 00:05:00 수정 2018-10-16 11:03:02

연세대 법학과 졸업.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연세대 법학과 졸업.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E는 자전거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다. 처음 산악자전거를 구입하던 십수 년 전에 그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내게는 큰 행운처럼 여겨졌다. E는 자전거를 고르고 타는 법에서부터 자전거 타기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자전거와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자전거가 등장한 이후 인류가 어떤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었는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자전거가 인류의 삶과 문화, 가치관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나 역시 변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전문가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 특히 자긍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E는 여전히 자전거를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고쳐주고 관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다. 자전거 인구도 폭증했다.

그중에서도 선수들이나 탈 만한 고성능,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즐기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E는 그런 사람들의 수요에 맞추어 자전거를 대신 골라주고 적정한 이익을 얻었다. 폭리를 취할 수도 없는 것이 스마트폰을 몇 번만 톡톡 두드려도 대충 가격이 나오는 세상이고 그렇게 하기에는 E의 직업윤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E에게 좋은 자전거를 골라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웬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자전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에 따르면 좋은 자전거일수록 엄밀한 관리가 필요하고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고 적절한 방식에 따라 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비싼 자전거가 제 몫을 하고 수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해지고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E에게 자전거를 가지고 찾아온다. 고장을 수리하고 부품을 교환하며 청소를 해달라고 한다. E를 통해 구매를 하지 않은 자전거가 훨씬 더 많다. E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자전거를 기꺼이 돌봐주고 있다. 특히 묵혀뒀던 자전거를 분해해서 깨끗이 청소할 것을 권한다. 청소를 제때 해야만 부품이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E가 자전거 한 대를 낱낱이 분해하고 청소한 뒤 다시 조립하는 것까지 2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청구하는 비용은 몇 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종일 청소만 몇 대 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낮은 부가가치의 뒤치다꺼리며 허드렛일만 해서는 가게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가 가진 고급의 기술과 지식 또한 퇴행하고 있다. 그런다고 비용을 더 받을 수도 없다. 인터넷이며 SNS, 입소문을 통해 당장 다른 곳과 비교가 되고 바가지를 씌우느니 뭐니 하여 악소문이 난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사랑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E로서는 자전거와 관련해서 그런 구설에 오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어쩌다 E의 가게에 들러 앉아 있다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굴러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문제투성이인 자전거를 가지고 온다. E는 누구든 반갑게 맞지만 나는 한숨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경쟁사회의 현실, 자본의 논리가 사람 잡는 세상에서 E와 같은 일을 겪는 장인, 전문가들은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다.

어느 날 그들이 모두 견디지 못하고 후계자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의 모습을 한 AI가 들어선다면? 값이 싸질지 비싸질지는 몰라도 내 자전거를 맡길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그릇들, 방짜유기, 칠기, 목기, 발우,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또 어찌 되나…. 아니, 코가 석 자인 내가 지금 남 얘기를 하고 있을 때인가?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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