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의 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여행] ⑨가고시마

입력 2018-03-10 00:05:00

가이몬산 오르막 4km 두바퀴로 올라…일본인들은 '깜짝'

나가사키바나에서 바라본 가이몬산.
나가사키바나에서 바라본 가이몬산.
힘겹게 오른 가이몬산 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했다.
힘겹게 오른 가이몬산 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만난 귀여운 세고돈.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만난 귀여운 세고돈.
용궁신사
용궁신사

가고시마(鹿兒島)는 다양한 매력으로 똘똘 뭉친 도시이다. 도시, 온천, 활화산, 산과 바다, 마츠리(축제), 특색 있는 먹거리 등 죄다 헤아리기도 바쁠 지경이다. 가고시마, 미야자키 등 남규슈 지방에 대한 관심도 점점 더 높아지지만 막상 다가서기가 쉽지 않고 비용도 꽤 든다.

여행의 선택지에 있어서 접근성은 큰 변수가 된다. 만약, 매력 덩어리인 가고시마가 접근성까지 갖추었다면 모르긴 하되 일본 여느 지역보다도 한국인으로 들썩였을 거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후쿠오카에서 350㎞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나마 외지인들의 손때가 덜 탄 신선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 - 그 중심에 선 가고시마

가고시마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걸려 직접 가는 것과 후쿠오카에 도착한 후 신칸센으로 약 2시간 반을 가는 것이다. 둘 다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세 번째 방문하는 가고시마이지만 자전거로 돌아본다는 기대감에 더욱 설렌다. 시가지는 1868년에 일어난 메이지유신 150년을 기념하여 온통 축제 분위기이다. 오늘의 일본이 있게 한 메이지유신의 3인방 중 최고 인물인 사쓰마번(薩摩蕃) 출신의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다카모리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사쓰마번(현 가고시마)과 조슈번(현 야마구치) 사이를 중재하여 삿초동맹(薩長同盟)을 통하여 타도막부를 주창할 때 사쓰마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여 우리에겐 국수주의자 이미지가 강한 사이고 다카모리이지만, 그에 대한 일본인의 사랑은 곳곳에서 열정적으로 드러난다.

일본인들은 세고돈 선생이라 하여 앙증맞은 캐리커처로 다카모리를 애교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18세기 당시 일본인들의 평균키였던 158㎝보다 훨씬 장신인 178㎝에 몸무게가 120㎏에 달하는 거구였다지만 거리마다 그의 귀여운 캐리커처를 담은 각종 조형물 먹거리 기념품 등 물건들이 넘쳐난다.

◆규슈 최남단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신선함

가고시마현 자전거 일주는 가고시마에서 약 50분 떨어진 이부스키(指宿) 인근에서 시작해서 규슈 최남단을 한 바퀴 돌아오는 일정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해야 갔던 길을 또다시 돌아오는 번거로움을 없앨 수 있다. 가고시마에서 보통열차로 환승 후 한적한 시골마을인 이부스키에 도착하여 자전거로 약 30분 달리면 'JR최남단역'인 니시오야마(西大山)에 도착한다. 노란 우체통이 반갑게 맞아준다. 흡사 동해안 정동진에서 만난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닮았다.

여기서도 렌터카로 여행 온 한 한국인 가족을 만난다. 이 외딴 지역까지 어떻게 왔을까? 중년 부부와 딸은 연신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 찍기에 한창이다. 자전거로 이 먼데까지 왔다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먹거리들을 챙겨준다. 참 방방곡곡 한국인들의 물결이 대단하다. 연간 700만 명이 일본을 찾는다고 하니 엄청난 흐름이다.

JR최남단 종착역과 가이몬산(開聞岳)을 배경으로 흐드러진 유채꽃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이 연출된다. 비구름이 잔뜩 걸린 가이몬산은 신비로움마저 준다. 최남단역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비가 거세진다. 그냥 맞고 달릴 정도의 가벼운 수준이 아니어서 유일한 쉼터인 가게에서 600엔짜리 카레 덮밥과 커피 한잔으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다시 추스르고 규슈 최남단 땅끝마을인 '나가사키바나'(長崎鼻)로 간다. 최남단, 땅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미는 때론 짜릿하다. 문득 몇 해 전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케이프타운의 희망봉에 간 추억이 떠오른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라는 단어가 '여기가 끝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라던 기억이 새롭다. 언제 또 올까 싶어 인증샷, 인생샷을 찍었었다.

괜히 센티 해지는 감정을 뒤로하고 15㎞를 달려 땅끝 곶으로 간다. 가는 길은 상쾌하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우라시마타로' 앞에서 잠시 소망을 읊조린다. 인근의 '용궁신사'를 만난다. 우리들 옛날이야기인 거북이와 용왕 이야기를 닮은 신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부산 기장의 해동 용궁사와도 살짝 닮았다.

나바사키바나의 해도곶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선 가이몬산을 찍으면 어디서나 그림이 된다. 최남단 땅끝 해도곶에 온 느낌이 묘하다. 자전거로 이곳을 오다니 스스로도 놀라운 감동을 지울 수 없다. 해도곶 등대 등 곳곳을 천천히 둘러본다. 오래도록 추억에 담고 싶어 시간을 지체한다. 다음 번 오게 되면 아주 느리게 느리게 오고 싶다.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일본 여성의 애처로운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가이몬산으로 향한다. 사진도 같이 정답게 찍었건만 메일 주소라도 하나 받아 올 걸 하고 돌아오는 내내 아쉬움이 남았다.

가이몬산(=가이몬다케)는 일본 100대 명산이라고 한다. 924m에 불과하지만 후지산(富士山)을 닮았다 하여 리틀 후지라고도 불린다. 바다와 늘 조화를 이루어 웅장함이 돋보이는 가이몬산은 규슈 남단 어디를 가던 잘 보인다. 참 잘생긴 산이다. 좌우 대칭이 완벽하다. 산 우두머리는 늘 구름에 살짝 가려져 있다.

약 30분 달려 가이몬산 입구에 들어섰다. 자전거로 전망대까지 오르겠다고 하니 입장료 받으시는 분이 연신 고개를 갸우뚱한다. 입구 초입까지 자전거로 오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경사 높은 전망대는 무리란다.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360엔 비싼 입장료를 내고 가이몬산 전망대로 오른다. 제2전망대까지는 약 4㎞ 내외로 계속 오르막이다. 약 600m까지 오르는 것이다. 비 오듯 땀을 흘려 전망대에 오른다. 방금 지나온 나가사키바나와 툭 터인 바다 조망이 힘들었던 오르막 기억을 싹 지운다. 차로 그곳까지 올라온 일본인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을 좋아한다고 한다. 내친김에 가이몬산 정상을 가까이 가고 싶지만 오늘 중 이부스키로 서둘러 다시 돌아가야 해서 여기서 접는다.

또 다른 포인트인 이케다호수(池田湖)로 간다. 가이몬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규슈 최대의 칼데라 호수다. 둘레가 15㎞이고 최장 수심이 150m에 이른다 한다. 자전거로 호수 주변을 30분여 서서히 달리면 봄의 전령사인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이 만발한 단지를 만난다. 그래도 제주도 성판악, 성산포 인근의 유채꽃보다는 못하다.

여기서 이부스키까지는 약 20㎞로 정도이다. 시간이 지체된 탓에 부지런히 밟아야 한다. 이부스키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소위 바닷가에서 하는 온천 모래찜질로 유명한 동네이다. 바닷가에서 하는 모래찜질인 탓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찬 날이면 일정을 포기해야 한다. 늘 그렇듯 여행은 날씨 복이 좋아야 한다. 오늘처럼 비와 바람이 동시에 세찬 날은 모래찜질은 포기다. 이부스키 시가지에 들어서면 길거리 어디서나 더운 온천수에서 뿜는 증기가 곳곳에서 쏟아 오르고 있다. 온천을 체험하기 위해 예약한 료칸에서 규슈 최남단의 첫날을 보낸다. 이부스키는 말 그대로 깡촌이다. 저녁이 되니 료칸의 온천 외에는 딱히 할 게 없다.

가져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인상 깊게 읽는다. 잊혔던 20대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저 깊은 심연의 장에서 하나씩 쏟아 오른다. 하루키 선생의 묘사력은 대단하다. 30년 전 기억을 마치 어제처럼 끄집어 내준다. 책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이다. 여행과 동반하는 독서에는 상상력이 한층 가미되어 감흥이 배가 된다.

◆바닷길이 더욱 상쾌한 이부스키~가고시마 50㎞

다음 날 아침, 이부스키에서 가고시마 시내로 이동한다. 약 50㎞ 남짓이다. 이부스키 시가지에서 약 4~5㎞ 정도만 빠져나가면 멋진 바다를 끼고서 달릴 수 있는 최고의 해변도로에 닿을 수 있다. 길도 쉽다. 바닷가 외딴길 하나라 그대로 쭉 달리면 된다. 차들로부터 방해도 적게 받으며 햇살 밝은 바다를 내내 보며 페달질을 한다.

자전거 여행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큰 동반자이다. 두 번이나 업그레이드한 음향 스피커에는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약 1천여 곡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녹음하여 준비했다. 한적한 바닷길에서 듣는 각종 음악은 외로움, 지겨움을 날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자신이 자연의 연주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커다란 음향을 들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일본인들이 다가와 부러움의 표시를 자주한다. 이래저래 이러한 한적한 멋진 바닷가에서의 라이딩은 내적인 포만감을 채워주기에 딱 좋다.

가고시마로 향하는 50㎞ 남짓의 해안도로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풍부한 뷰를 가지고 있다. 약간의 정성을 기울인다면 히로시마 세토나이카이 코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기자기함과 멋진 코스를 견줄 수 있을 듯하다. 역시 문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찾는 이들이 적어 오히려 쓸쓸해 보인다.

혼자만 보기에 아까운 경치들이 계속 이어진다. 개발되기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가고시마 해변에 대한 여운을 더욱 오래도록 남게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아침에 출발하여 점심 무렵 가고시마 중앙역에 도착한다.

가고시마 중앙역은 활기가 넘친다. 일본을 여행하노라면 도시가 열차 역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방사선처럼 형성된 구도를 자주 보인다. 어딜 가나 중앙역은 도시의 중심이고 맛집, 호텔, 쇼핑 등이 죄다 몰려 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도시 형성 과정이다. 어느 도시 중앙역들이 다 그랬지만 가고시마 중앙역은 화려하진 않지만 친숙함과 정겨운 열차 역이다. 어슬렁어슬렁 거닐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곳이다. 중앙역 1층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휴식 삼아 읽다 남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끝머리를 읽는다. 딱 쉬고 바쁜 오후 라이딩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사쿠라지마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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