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철강 공급보다 수요 많아 극단적 수입 제한 못해"
비즈니스맨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는 나라 살림을 살펴보면서 주판알을 튕길 때마다 화가 치미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바로 달려간 곳이 미국이었고,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지난해 가을 우리나라를 찾아 웃는 얼굴을 보였건만 트럼프 대통령은 환하게 웃다가도 '통상 부분'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표정이 확 달라졌다. 한미 두 나라 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더니 미국이 우리나라와의 통상에서 큰 손해를 봤고, 이 때문에 하루빨리 이 협정을 고쳐야겠다는 것이다.
최근엔 대구경북 주력산업 중 하나인 '철강'으로 인해 미국 국내 철강산업이 수입산에 밀려 큰 낭패를 보고 있으니, 관세를 크게 올리겠다는 엄포까지 미국 측은 내놓고 있다.
도대체 미국은 왜 이러는 것일까? 예전에 우리가 알았던 미국과는 완전히 달라져 가고 있는 미국. 그 원인과 해법이 궁금했다.
2007년부터 2011년 말까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던 김종훈(65'그는 대구 출신으로 경북대사대부설고를 나왔다) 전 국회의원이 생각났다. 그는 2006년 6월부터 1년 동안의 한미 FTA 체결 협상 때 한국 측 수석대표이기도 했다. 공격적 협상 자세 덕분에 검투사라는 별명도 붙었다.
김 전 의원에게 전화했더니 대한체육회 명예대사 겸 국제위원장으로서 평창동계올림픽 진행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폐막 직후 서울로 돌아온 김 전 의원을 2월 26일 오후 늦게 여의도에서 어렵게 만났다.
-미국처럼 큰 나라가 우리나라에 대해 이렇게 험악하게 나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더욱이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이 아닌가?
▶지구촌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의 세계적 교역 시스템이 태동한 것은 1947년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가 들어서면부터다. 그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의 선봉에 서 왔다. 그러나 GATT 체제로 70년을 살다 보니 미국의 생각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국의 민주당은 최근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전부터 자유무역이 미국의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라는 공화당 대선 후보는 비즈니스맨 출신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미국 중서부 공업지역을 정치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아메리카 퍼스트'를 들고 나왔다. 예전의 공화당 후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트럼프라는 정치인 개인의 평소 소신, 그리고 민주당 텃밭을 공략하기 위한 선거전략이 맞물리면서 이런 현상이 나왔다.
게다가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뭔가 하나를 해야 한다'는 급박한 정치적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이러한 양상들이 맞물리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통상 압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우리가 대응을 잘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미국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통상 압력이 커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미국은 엄청나게 크고 개방된 시장이다. 그러니 우리는 미국 시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을 달래고, 맞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몇 년간 그런 노력이 미흡했다. 우리의 통상 교섭력이 최근 몇 년간 떨어졌다. 돌아보자. 박근혜 정부는 외교부에 있던 통상교섭본부를 산업통상자원부로 넘겨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이것이 잘못됐다는 점을 알았지만 이를 환원시키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최근 미국 통상 압력이 매우 강하게 '추세적 경향'을 보이면서 들어왔다. 결국 대응이 늦었다.
-중국이 미국에 가장 큰 손해를 보이는 국가 아닌가? 왜 미국은 우리만 혼내려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이 약해져 그렇다는 얘기까지 하는데?
▶미국은 중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EU에 대해서도 그렇다. 일본도 우리를 대하듯이 미국이 강하게 압박하지 못한다. 미국이 압박하지 못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FTA다. 이들과는 미국이 FTA를 맺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국은 FTA를 맺은 나라라고 다 같이 만만하게 보지는 않는다. 멕시코나 캐나다는 NAFTA를 통해 미국과 FTA가 체결돼 있다. 그런데 미국이 멕시코나 캐나다와 자유무역을 해보니 좋은 게 없었다. 그래서 불만을 갖는다. 그렇더라도 이들 나라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마음대로 제재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를 맺고 있다. 그래서 통상 압력의 타깃이 됐다. 또 한 가지 더, 미국은 우리나라 안보까지 책임져주고 있다. 통상에 대해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우리나라 철강 제품에 대해 '안보 문제'까지 거론하며 미국이 통상 압력을 가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철강이 무슨 안보 문제와 연결된다는 말인가?
▶우리도 미국의 겉과 속을 잘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내에서도 안보 문제로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미국이 우리 제품에 대해 극단적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철강의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나라다. 다시 말하면 국내에서 충당이 안 되니 구조적으로 외국산 제품을 사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지독하고 극단적인 철강 수입 제재는 못한다. 우리 철강 제품의 수출량을 줄이게 하고 관세를 다소 올리는 선에서 해결될 것으로 본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적극적인 대응 조치를 할 방침이다. 우리가 너무 세게 나가는 것은 아닌지?
▶미국에 대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따져보는 것은 좋다. 우리 정부가 WTO에 가서 10여 건의 제소를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8, 9건은 이기고, 2, 3건은 졌다. 우리도 쟁송력이 있다. 제소한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미국과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미국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다. 제소를 하면 시간이 많이 걸려 사실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는데 국제 여론 압박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제소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미국 정부를 설득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기울여야 한다. 저 크고 넓은 미국 시장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가 미국에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끼치는 나쁜 협정이라고 하는데? 한미 두 나라는 왜 FTA를 맺었나?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우리가 돈을 일방적으로 버는 구조가 절대 아니다. 두 나라 모두 혜택이 있으니 했던 것 아니겠나? 미국은 당시 공화당 정부로 부시 행정부였다. 기본적으로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공감하는 정부였다. 우리나라도 2004년 칠레와 FTA를 체결하면서 FTA의 효과에 대해서 간을 봤다. 체결하고 나서 효과를 경험해보니 좋았다는 판단이 섰다. 이후 우리나라는 EU와도 하고 인도와도 FTA를 체결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FTA는 수출에 도움이 됐다. 그다음 FTA 대상국은 미국이었다. 가장 크고 개방된 시장을 우리는 두드려야 했다. 가진 것 없는 우리나라는 크고 넓은 시장으로 가야 한다. FTA 체결 이후 미국이 불만을 갖지만 실상은 두 나라 다 좋은 구조가 됐을 뿐 어느 일방에 쏠리는 구조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가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FTA가 가져온 수치 변화로 따지면 국내에서 미국산의 시장 점유율은 8%에서 11%로 3%포인트(p)나 늘었다. 우리나라 물건은 미국 시장에서 0.6%p 점유율이 증가했다. 수치로 따져보면 우리가 손해인 것 같은데 미국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0.6%p의 증가가 물량'액수로 환산하면 사실 크긴 하다. 우리 시장 규모는 작으니 3%p 늘어봐야 미국 측 입장에서는 작아 보이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다른 영역도 봐야 한다. 미국 농업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미 FTA를 높게 평가한다. 미국산 쇠고기나 옥수수 등의 수출길이 넓어졌다. 미국의 서비스 산업은 또 어떤가. 미국은 1'2차 산업 비중이 매우 낮고 서비스 산업이 75%를 차지하는 나라다. 이 부분에서 미국은 한미 FTA로 인해 압도적인 효과를 누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독특한 개인 성향과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물려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내가 아는 미국 내 한미 FTA 협상가들도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 내 정상적 정서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어찌 됐든 트럼프 대통령의 성화 때문에 한미FTA는 개정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말이 있다. 흥정을 할 때 깨기는 쉬운데 흥정, 즉 딜(Deal)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결국 협상에서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이 협상이 매우 어렵고 고단한 과정이기 때문에 전술과 전략을 갖추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하고 이익의 균형이 이뤄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은 대국과 소국이 만나는 것이다. 국익과 이익 균형을 맞추는 것이 몹시 어렵다.
-2006년 6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년 동안 한미 FTA 협상을 벌였던 기억을 되살린다면?
▶협상을 깨기 쉽다는 얘기도 했는데 당시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던 때도 많다. 그만큼 어려운 협상이다. (그는 인터뷰가 이뤄지고 있는 방안 한쪽 벽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저 벽면 전체가 책장이라고 한다면 저 부분을 모두 서류로 빽빽하게 메울 만큼의 기록이 쌓였다. 한미 FTA 협상은 통역도 없이 영어로 했다. 통역이 함께하면 대화가 늦어지고 의미 전달도 잘 안 된다. 아주 까다로운 부분은 의사소통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문서로 교환하면서 의미를 익혔다. 협상 막바지에는 24시간 협상도 했다. 협상장에는 창문이 없는데 그러다 보니 낮인지, 밤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됐다. 미국 사람들과 협상을 해보면 집요한 면이 있다. 그래서 더 어려운 점이 있다. 2010년 자동차 부분에 대한 추가협상 때도 밤낮이 따로 없었다. 미국에서 할 때는 외딴곳에 들어가 숙식을 같이하면서도 했는데 글자 그대로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마라톤 협상이었다.
-시야를 넓혀보자. 우리가 FTA 영토를 더 넓혀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중일 FTA라든지, 다른 시장을 찾는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중일 FTA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세 나라를 한꺼번에 묶는 것은 역사적인 이슈나 정치적 문제도 고려해봐야 한다. 협상을 하다가 돌발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 일본과 협상을 하다 보면 독도 갈등이 터져 나오고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한일 협상에서도 그렇고 중국과 일본이 협상할 때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FTA 협상에 있어서는 정서적 문제도 중요하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계기가 나타나면 협상은 난항을 겪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야 할 또 다른 시장이 당분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TPP(Trans-Pacific Partnershi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잘 봐야 한다. 환태평양 국가들 12곳이 들어갔다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면서 미국이 빠졌다. 지금 11개 나라 체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기에 들어가 있지 않다. 이 TPP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 새로운 공급 체인이 만들어진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일본에서 차 엔진을 만들고, 태국에서 차체를 생산해낸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타이어를 갖다 댄다. 이런 식이다. 이런 공급 체인이 형성되면 새로 시장을 뚫기 힘들어진다.
빠졌던 미국이 다시 들어온다는 얘기까지 있다. TPP시대를 준비해볼 필요가 있다. TPP에 들어가 있는 나라들을 보면 멕시코와 일본을 제외하고 모두 우리나라와 FTA가 체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TPP에 우리나라가 편입되면 한일 FTA 체결 효과가 나온다. 물론, TPP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대 여론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칫 시기를 놓치면 왕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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