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도덕적 무뇌아(無腦兒)

입력 2018-02-28 00:05:00 수정 2018-10-12 09:42:22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어도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들이 옳다는 주장을 한다. 지적(知的)으론 이런 과정을 무한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가짜 확신이 확고한 현실과 충돌하는 것인데, 보통 전장(戰場)에서 그렇게 된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46년 트리뷴지(紙)에 기고한 글의 한 대목으로, 6'25전쟁은 이를 여지없이 증명해줬다. 6'25가 터진 다음 날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는 "한국에서 미국의 꼭두각시들에 의한 중대한 전쟁 도발"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당시 프랑스 지식계의 간판 인물로, "반(反) 공산주의자는 개"라고 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신념이기도 했다.

이에 그다음 날인 6월 27일 사회학자 레몽 아롱은 '르 피가로'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한 인민민주주의 군대가 남한을 침략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며 프랑스 공산당과 사르트르를 반박했다. 이 논쟁은 6'25가 북한의 남침임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레몽 아롱 쪽으로 승부가 기울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승복하지 않았다. 미국의 남침 유도라는 음모론으로 가짜 확신을 지키려 했다. "나는 남한의 봉건주의자들과 미 제국주의자들이 이 전쟁을 유도했다고 믿어 마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전쟁을 북한이 시작했다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진실을 보지 않으려 작정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궤변이다. 이런 궤변은 비평집 '상황Ⅹ'(1976)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그는 1954년 소련을 방문한 뒤 '리베라시옹'과 인터뷰에서 "소련은 완전한 비판의 자유가 있다"고 했는데 거짓말로 드러나자 '상황 Ⅹ'에서 이런 변명을 늘어놨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그렇게 한 일부 이유는 고국에 돌아오기 무섭게 나를 초청해 준 나라를 모욕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소련과 내 사상 사이의 관계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미투(#Me Too) 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란 음모론을 제기한 김어준 씨와 여론의 질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두둔하는 '이른바 진보진영'의 궤변도 이에 못지않다. 내 편은 절대 선, 네 편은 절대 악이라는 진영논리에 갇혀 본질이 무엇인지 보지 않으려는, 도덕적 무뇌아(無腦兒)의 '커밍아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