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산업 메카 예천] 면역력·생산성 뛰어난 '장원벌' 개발…꿀벌 농가 700억 더 번다

입력 2018-02-23 00:05:00

지자체 첫 곤충연구소 설립, 12년 만에 신품종 개발 성공…정부장려품종 1호 선정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안에 멸망한다."

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가설이다. 이 가설을 놓고 학계에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타당성 있는 말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의 꿀벌 개체 수는 점차 감소 중이다. 국내에서는 수년 전부터 꿀벌 감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이 확산하면서 양봉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치료제가 없는 치사율 90%의 병으로 꿀벌에게는 치명적이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곤충 도시 예천군은 10여 년 전부터 꿀벌 산업 활성화를 위한 연구에 들어갔고, 이현준 예천군수의 지휘 아래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꿀벌보다 면역력과 생산성이 뛰어난 장원벌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10여 년 만에 신품종 개발은 기적" 장원벌 개발까지

장원벌은 꿀벌 중에서도 최고의 일꾼으로 꼽힌다. 농촌진흥청과 예천군 등에 따르면 장원벌은 우리나라 양봉 농가에서 기르던 일반 꿀벌보다 벌통당 꿀 생산량이 31%가량 많다. 일벌 한 마리가 수집해오는 꿀도 평균보다 19% 많고, 번식력도 뛰어나 일벌 수도 45%가량 늘었다.

장원벌은 예천군이 농촌진흥청, 중국 길림성양봉연구회와 함께 2014년 육종한 신품종이다. 예천군이 새로운 꿀벌 품종 개발에 나선 것은 국내 양봉 농가에서 키우는 꿀벌의 품종이 서로 뒤섞이면서 해마다 꿀 생산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양봉용 서양 꿀벌이 처음 도입된 것은 110여 년 전이다. 이후 다양한 품종의 꿀벌이 해외에서 들어와 양봉 농가에 보급됐다. 하지만 그동안 체계적인 품종 관리와 개발을 위한 노력은 전무했다. 이 때문에 여러 품종의 꿀벌이 뒤섞이면서 순수 혈통을 잃은 잡종 꿀벌이 국내 생태계를 점령했다. 잡종 꿀벌은 꿀 수집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여왕벌의 번식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현재 국내 양봉 농가의 단위당 꿀 생산량은 양봉 선진국인 중국과 호주 등의 절반에 불과하다.

예천군이 장원벌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1997년 지방자치단체로는 최초로 곤충연구소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연구소에서는 꽃가루를 옮겨 과일'채소를 수정시키는 머리뿔가위벌(사과수정벌)과 호박벌(뒤영벌)을 대량 증식하는 노하우를 확보했다. 예천군은 꿀벌 증식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 2002년부터 새로운 품종의 꿀벌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009년에는 꿀벌육종연구센터를 별도로 설립하기도 했다. 농산물을 개량해 생산량을 10% 늘리는데 평균 15년의 연구 기간이 소요되는데 생산량이 30%가량 뛰어난 장원벌이 12년 만에 개발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장원벌 개발로 국내 꿀 생산량은 6천300t가량 증가했고 농가소득은 700여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장원벌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부장려품종 1호'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최근 꿀벌에 대한 생태적 이해가 높아지면서 꿀벌의 공익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며 "양봉 산물의 무한한 시장 잠재력을 고려할 때 전통적 1차 산물의 범위를 벗어나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봉독 등 다양한 양봉 산물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어 미래를 선도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원벌만 사는 울릉도…우수 품종 보존'보급을 위한 전초기지

울릉도에 있는 나리분지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넓은 평지다.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성인봉과도 이어져 있어 울릉도 내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다. 나리분지 안에는 1만6천㎡ 규모의 출입제한 구역이 있다. 예천군이 조성한 장원벌 전용 공간이다. 예천군은 울릉군과 MOU를 통해 울릉군 양봉 농가들이 그동안 키우던 다른 품종의 벌을 모두 섬 밖으로 내보낸 뒤 나리분지에 장원벌 육종장을 조성했다.

벌은 공중에서 교미하기 때문에 품종을 순수하게 유지하려면 반경 20㎞ 안에 다른 벌들이 없어야 한다. 이 때문에 육지에서의 품종 관리는 불가능에 가까워 우리나라의 육종장은 대부분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에 위치해 있다.

예천군이 처음 울릉군에 육종장을 조성할 때는 넘어야 할 산도 많았다. 처음 다른 품종의 꿀벌을 내보낼 때 현지 양봉 농가들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또 육종 초기에는 월동이 되지 않아 농가에서 실패하거나 알려진 만큼 채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양봉 농가들 사이에서 장원벌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이런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예천군은 김인석 예천군양봉연구회 대표 등 전문가들을 현장에 급파해 육종 방법에 대한 교육을 시행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자 현재는 농가들도 장원벌의 우수성을 알게 됐고 적극 협조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장원벌은 잦은 벌통 속살피기(내검)를 피해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하고 먹이를 줄 때는 소량으로 여러 번 나누어 줘야 한다"며 "꿀을 따는 시기(유밀기)에는 일반벌에 비해 느슨하게 키우는 등 기본적인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예천군은 장원벌에 대한 품종 개발은 물론 육종 기술도 타 지자체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예천군은 장원여왕벌 3천 마리를 공급한 데 비해 타 지자체는 300~400마리 선에 그쳤다. 육종장의 규모 차이도 있겠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공급량이 10배나 차이가 난다는 것은 예천군의 기술이 그만큼 앞서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봉래 예천곤충연구소 친환경바이오 팀장은 "예천군은 20여 년간의 벌 품종 연구, 개발, 보급 노하우를 갖고 있다"며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마리당 10만원 하는 여왕벌의 가격을 5년 안에 절반으로 낮추어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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