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말린 남미여행] ② 긴장 늦출 수 없는 도시

입력 2018-02-22 00:05:01

눈 깜짝할 새 카메라와 이별…그래도 웃었다, 여긴 남미니까

인구 95%가 유럽 이민자로 구성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이 때문에 거리 곳곳에선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인구 95%가 유럽 이민자로 구성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이 때문에 거리 곳곳에선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스테이크 맛집
야외테이블이 가득 놓인 팔레르모의 밤거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스테이크 맛집 '돈 훌리오'의 내부 모습과 돈 훌리오에서 먹은 저녁 식사.
야외테이블이 가득 놓인 팔레르모의 밤거리.

푸에르토 이구아수에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은 그리움을 유발할 만큼 아름다웠다. 늦은 오후의 따스한 빛이 연두색의 숲을 뒤덮고 분홍빛 뭉게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꿈 같은 풍경이었다. 조금 불편하고 긴 밤을 지나 화창한 햇살을 맞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중심가인 '애비뉴 데 마요'(av.de mayo)역으로 갔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중심가와 떨어져 있지 않은 저렴한 숙소를 찾았다. 직원에게 종이지도를 받은 후 나 나름 단장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서울의 명동 같은 '플로리다 거리'가 가까이에 있었다. 환전을 위해 그곳으로 갔다. 가자마자 "깜비오(환전)! 깜비오!" 하면서 거의 10m에 한 명씩 환전상들이 서 있었다. 그나마 덜 무서워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환전하자"고 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중년 남자는 작은 문이 달린 창고 같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한 명은 환전하고 한 명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고 했다. 위조지폐인지도 잘 모르면서 능숙한 척 환전한 돈을 불빛에 비춰보고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행동했다. 내내 맘 졸였던 환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여유롭게 플로리다 거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는 명성답게, 거리의 풍경은 과연 그 말을 실감 나게 했다. 스페인과의 무역량이 증대하면서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이민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넘어왔다. 인구 95%가 유럽 이민자로 구성되었는데, 이로 인해 아르누보, 바로크, 네오고딕 등 다양한 서양 건축양식이 많은 건축물에 녹아 있다. 수공예품과 그림들을 판매하는 프리마켓을 구경하고 오래된 와인 가게와 상점에서 아이쇼핑을 즐기며 플로리다 거리를 배회했다.

◆방심하는 순간 사건은 일어난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오벨리스꼬가 보이는 '7월 9일 거리'를 걸으며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7월 9일 거리는 폭이 140m의 8차로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길로 알려져 있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약 990만㎡(300만 평) 위에 있던 집들이 헐려야 했다. 정부는 정권 유지를 위한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고 국고를 대책 없이 여기저기에 쏟아부었다.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빈곤하게 만들어버린 이유 중 하나이다.

필자가 여행하던 때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제상황이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자주 발생하니 조심하라는 말들이 많았다. 온종일 아빠가 빌려준 DSLR 카메라를 품에 안다시피 하고 다녔다. 휴대폰을 꺼내볼 때도 항상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음을 좀 놓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사건은 벌어졌다. 아름다운 도시 분위기에 취해 마음이 더 풀렸을지도 모른다. 예쁜 건물을 배경으로 예림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 끈을 손목에 감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워낙 넓은 도로이고 아직 해가 훤한 오후여서 별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예림이 뒤에서 자전거를 탄 흑인 남자가 카메라를 잽싸게 낚아챘다. 흑인 남자는 균형을 잃고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빠른 속도로 도주했다. 나는 그 광경을 눈앞에서 다 보고 있었다.

오직 카메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이성을 잃고 자전거를 쫓아 7월 9일 도로를 뛰었다. 도저히 자전거를 따라잡을 수 없어, 택시를 타려고 했다. 함께 흥분한 택시기사들이 서로 "자기 택시를 타라"며 우리를 불렀다. 갑자기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도둑을 쫓아갈 수 없었다. 남미여행을 시작한 지 딱 일주일 되는 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물건만 사라졌을 뿐

푸에르토 이구아수에서 담은 장엄한 폭포 사진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고, 남은 여행 동안 찍을 카메라도 사라졌다. 우린 허탈감을 안고 가까운 경찰서에 찾아갔다. 경찰관은 관할이 다르다며 7월 9일 거리를 담당하는 경찰서로 우리를 보냈다. 스페인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워 번역기로 피해 상황을 알려주었다. 경찰관들은 점점 우리를 도와줄 의지가 없는 듯 보였다. 결국 우리는 내일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숙소에 돌아갔다.

나는 아이를 잃은 엄마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예림이는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카메라를 도둑맞을 때 예림이는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다. 곧 새 신발을 살 건데 짐을 만드는 게 싫다며 그냥 운동화가 그려진 양말을 신고 나왔었다. 예림이는 양말이 완전히 꼬질꼬질했고 내 머리는 산발로 엉망이었다. 경찰관들이 보기에 우리 모양새가 얼마나 가관이었을까. 지금도 그때 장면을 회상하면서 예림이와 키득거린다.

다음 날부터 이틀 동안 처리할 일들이 많았다. 카메라 보험금 청구를 위해 경찰서에 두 번이나 다시 갔는데, 길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웠다. 정말 몇 시간 동안 헤맨 것 같다. 비행기 표 변경을 위해 여행사 사무실도 갔다. 볼리비아 비자 신청을 위해 볼리비아 대사관에 가는 길엔 이산가족이 될 뻔도 했다. 예림이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지하철을 탄 순간 나는 주춤거리다 지하철을 놓쳤다. 일이 거의 마무리된 후 우연히 발견했던 중고카메라 거리를 찾아갔다. 몇 곳을 둘러보다 중고 하이브리드 카메라 한 대를 마련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사진의 색감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원래 있던 DSLR 카메라보다 가벼워서 좋았다. 일이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카메라 도둑은 잊은 듯 바비큐 가게에서 핫도그를 사 먹었다. 한입 베어 물자 맛있는 육즙이 터져 나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길거리 핫도그라도 고기로는 장난 안 친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서점에 가서 스페인어 회화책을 사고 사랑스러운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예림이와 거리를 걸었다.

생각해보면 초반에 나쁜 일이 없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방심해서 더 큰 일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진도 더 많이 잃었을 것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물건 하나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뒤숭숭한 마음을 잠재워준 따뜻한 저녁

마지막 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을 행복하게 남기는 것에 충실하기로 했다. 공항 가는 길을 미리 익힌 후 '돈 훌리오'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식당 앞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럽 사람으로 보이는 열댓 명의 사람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KLM항공사의 파일럿과 승무원들이었다. 소소한 대화가 오갔고 어쩌다 보니 그들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고풍스러웠다. 호두나무로 보이는 목재가구들과 가죽 테이블보가 식탁마다 덮여 있었다. 메뉴 고르는 일은 그들이 알려주는 대로 했다. 바게트와 샐러드가 나오고 메인요리인 스테이크가 나왔다. 한 점 입에 넣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와인을 다 마시면 바로바로 웨이터가 잔에 채워줬다. 코끝까지 깊게 퍼지는 와인 향이 스테이크와 너무 잘 어울렸다. 디저트로는 사과 타르트를 주문했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좀 달랐다. 사과 한 개를 그대로 설탕에 절여 아이스크림을 올려 나오는 것이었다. 너무 달아 많이 먹진 못했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어봐서 좋았다. 함께 식사했던 사람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인데도 허물없이 대화하면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정말 너무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팔레르모 거리로 넘어갔다.

팔레르모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촌이다. 감각있는 상점, 분위기 좋은 펍과 클럽들이 모여 있어 밤에 거닐기 좋은 장소이다. 우리는 일일 탱고 교습소를 찾아다녔다. 교습소엔 하나같이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형식적인 느낌이 강했다. 대신 우리는 분위기 좋고 가볍게 춤을 출 만한 펍을 찾기로 했다. 음악소리가 크고 야외 테이블이 있는 펍을 찾았다. 맥주 한 잔을 놓고 리듬을 타면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사다난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을 예쁘게 다듬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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