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백두산 흑요석, 어떻게 대구까지 왔을까
포항시 죽장면 북부에서 발원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호강은 본류 길이가 118㎞에 이르는 중급 하천이다. 동서로 긴 띠 모양의 금호평야는 낙동강 연안의 들판과 이어지며 대구분지를 형성한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고고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은 "강을 고고학적으로 접근할 때 금호강만큼 적절한 곳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시기, 연대별 발굴 성과가 축적돼 있어 고대 촌락이 부족-읍성-소국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 역사의 기원이 금호강과 그 지류에서 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구의 구석기시대 출발을 알린 월성동 유적이 금호강'낙동강의 합수지점이고, 신석기시대 대표 토기인 빗살무늬토기가 첫 햇살을 받은 곳도 금호강변(동서변동)이었다.
◆금호강변서 구석기'신석기 유적 발굴=1980년대까지 대구의 고대사는 청동기시대로 한정되었다. 1998년 동서변동에서 한 연구원의 붓 끝에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드러나면서 대구의 역사는 5천 년을 소급할 수 있었다. 정설로 굳어지는 듯한 '대구역사 5천 년설'은 2006년 월성동 금호'낙동강 지점에서 좀돌날, 흑요석이 발굴되면서 1만~2만 년을 상한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강변에서 대구 문명의 태동을 알리는 유적지가 보고되면서 금호강과 그 지류에서는 수많은 선사유적지들이 앞다퉈 발굴되었다.
빗살무늬토기기 출토된 서변동 유적, 고대인의 거대 촌락 동천동 유적, 별도끼가 출토된 서변동 취락유적지, 선사시대 국가산업단지 연암산 석기제작장, 거대한 고분왕국 불로동고분군, 전국구 철기생산지 팔달동 유적이 모두 금호강변이나 지류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대 이청규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금호강 유역은 신석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를 거쳐 소국(小國) 정치체제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획기적인 유적지"라고 말한다.
◆선사시대 대구는 유라시아의 교통로=작년 1월 국립대구박물관은 월성동 구석기 유적의 흑요석 성분이 백두산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월성동 흑요석은 그동안 출처를 놓고 '백두산설' '일본 규슈설' '제3지대설'이 대립하고 있었다.
백두산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구석기시대 백두산과 대구가 이미 700㎞가 넘는 교역망으로 연결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1974년 평리동에서 출토된 한경(漢鏡'중국 청동거울)과 방제경(倣製鏡'중국식 거울을 모방한 청동거울)도 대구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미 낙랑을 포함하는 중국, 동북아권과 교역권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앞서 언급한 서변동 빗살무늬토기도 문명 흐름사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즐문토기로도 불리는 이 토기는 유라시아 바이칼 연해주 지방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토기문화는 동북아-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래됐기 때문에 신석기문화의 전파과정을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다.
대구가 고대 유라시아를 넘나드는 교역망의 한 축이었다는 증거는 이 밖에도 많다. 1956년 금호강변 와룡산 기슭에서 출토된 조형안테나식동검도 이 중 하나다. '조형'(鳥形)이란 새 장식을 뜻하는데 이는 시베리아 스키타이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런 국보급 청동검은 대구에서 세 점이나 출토돼 대구가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국제적 교역 루트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대륙 문명의 전파 루트 금호강=선사시대 대구에 수천㎞가 넘는 고대 교역망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자체로도 충격이다. 그러면 이런 유라시아를 넘나드는 문물이 어떻게 대구까지 전파되었을까? 찰스 레드만은 '문명의 발생'이라는 책에서 고대 터키 등 중근동에서 교역망이 1천㎞가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 흑요석의 대구 전파 과정이 바로 설명된다.
전문가들은 문명의 전파 경로로 강(江)을 주목한다. 학자들은 강이야말로 고대의 고속도로로 기능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대부분의 교역은 강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백두산에서 내려온 흑요석은 한강 이후 강원지역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후 한강-낙동강 수계를 따라 내려와 단양, 상주까지 내려온 후 금호강을 거쳐 대구 내륙까지 전달된 것이다.
특히 한반도 남부에서는 문명의 루트로 금호강의 역할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구로 유입된 문명은 금호강-형산강을 거쳐 경주로 전파됐고, 낙동강을 거쳐 부산, 일본까지 흘러 들어갔다.
금호강은 국내적으로 대구 내륙과 경주, 부산을 이어주는 요충지였고, 국제적으로는 대륙 문화의 남하 루트와 해양문화의 대륙 진출 사이의 한 교차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박승규 전 영남문화재연구원장은 "조형안테나식동검, 즐문토기 등은 동북아 유라시아를 넘나드는 대륙 단위 유물"이라며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는 여정에 대구, 금호강이 한 정류장으로 기능했다는 것은 큰 자랑"이라고 밝혔다.
▶월성동 구석기 유적의 흑요석=유리 성분 화산석으로 간단한 가공만으로 날카로운 단면을 얻을 수 있어 구석기시대의 맥가이버 칼로 불린다. 흑요석의 등장으로 조립, 사냥, 곡물 수확, 가죽 재단이 훨씬 정교해졌다. 출토지가 백두산과 일본 북규슈에서만 확인돼 후기 구석기 문화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
▶서변동 빗살무늬토기=민무늬토기를 쓰던 인류가 그릇에 무언가를 새긴 첫 번째 흔적이다. 인류에게 미(美)의식과 표현욕구가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흔히 빗살무늬토기를 신석기인의 예술세계가 녹아든 캔버스라 부른다. 시베리아에 원형을 둔 즐문토기는 동해안, 한강-낙동강-금호강 수계를 타고 대구 내륙으로 흘러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비산동 조형안테나식동검=1956년 와룡산에서 도굴된 이 국보는 수집상들을 거쳐 암거래된 후 지금은 호암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길이 32.2㎝, 너비 3.1㎝ 동검엔 유라시아를 넘나드는 청동기 문화 코드가 모두 녹아 있다. 악기 비파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동검이라고도 부른다. 한반도 전역에서 40자루가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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